외환위기·금융위기 이외에는 없었던 고환율…연준 긴축에 달러 초강세
고환율에 수입물가 상승…고물가 지속 시 금리 인상 이어질 듯
대외여건 악화로 수출 둔화…수입 증가에 경상수지 악화 우려
22일 원/달러 환율이 13년 5개월 만에 1,400원마저 돌파하면서 고환율·고물가·고금리·저성장이라는 복합위기 국면이 심화하는 양상이다.
고환율이 물가 정점을 지연시키고 금리 인상을 재촉해 경기 둔화 압력을 높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수출 증대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가운데 수입 증가 폭은 키워 경상수지 등 대외건전성 지표가 악화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달러당 1,400원을 넘어섰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돌파한 것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31일(고가 기준 1,422.0원) 이후 약 13년 6개월만에 처음이다. 1,400원대 환율은 과거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최근 원화 가치의 하락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강도 높은 긴축 등으로 달러가 초강세를 보이는 데 주로 기인한다.
미국 연준은 21일(현지시간) 연방기금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면서 세 차례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고환율은 한국 경제가 맞이한 고물가·고금리·저성장이라는 복합위기 국면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원화 가치의 하락은 수입 물가의 상승 폭을 키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7%로 전월(6.3%)보다 낮아졌으나, 수입 물가의 오름세가 지속된다면 물가 상승세는 다시 확대될 수 있다.
물가가 떨어지지 않을 경우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물가 안정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겠다고 밝힌 바 있다.
고금리는 가계 소비와 기업의 투자 위축을 낳고 부채 위험도 키울 수 있다.
한은의 ‘가계신용(빚)’ 통계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가계대출은 모두 1천757조9천억원에 이른다. 기준금리가 0.25%포인트(p) 인상될 때마다 산술적으로 가계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은 3조4천455억원 늘어난다.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이 물가 상승, 금리 인상, 가계 소비와 기업의 투자 위축 등으로 이어져 고물가와 경기 둔화 압력을 키우는 모습이다.
통상 원화 가치 하락으로 수혜를 본 수출 증대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달러만 초강세를 보여 중국·일본 등 수출 경쟁국들의 통화도 동반 약세를 보이고 있고 수출 기업들이 쓰는 원자잿값이 오히려 오르기 때문이다.
주요 교역국인 중국·미국 등의 경기가 둔화하고 있다는 점도 수출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지난달 수출은 1년 전보다 6.6% 늘어나는 데 그쳐 석 달째 한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한국의 주력 품목인 반도체 수출은 26개월 만에 감소했다.
반면 원유·가스 등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지난달 수입은 28.2% 증가해 15개월 연속 수출 증가율을 웃돌았다.
이에 지난달 무역수지는 94억8천700만달러 적자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56년 이후 월간 기준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수출입에서 적자 폭이 심화하면서 경상수지도 적자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재화 수출입과 관련된 다른 지표인 상품수지는 7월 11억8천만달러 적자를 기록해 10년 3개월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한국은행은 8월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재정수지와 경상수지 모두 적자인 ‘쌍둥이 적자’가 현실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아직 대외건전성 지표를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최근 월간으로 상품수지 적자가 나타났지만, 서비스 부문을 포함한 경상수지는 올해 연간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7월 말 기준(4천386억달러)으로 세계 9위 수준으로 국가 신용도를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는 게 한국은행의 분석이다.
정부는 그러면서도 외환 수급 전반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수출경쟁력 강화 정책 등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미국, 유럽의 고강도 금융 긴축이 가속하며 금융·외환시장의 높은 불확실성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과거 금융위기 등과 비교해 현재 우리의 대외 건전성 지표들은 양호한 상황이기 때문에 과도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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