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땅 인도네시아 찾아 한국 ‘스타트업의 꿈’ 키우다

“인구 2억7천만 명의 인도네시아는 기회의 땅입니다. 여기서 버틸 수 있다면 그 경험을 발판으로 동남아시아 시장의 60~70%를 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어렵기도 한 곳입니다.”

지난 9월1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만난 현지 벤처캐피털(VC) 매니저 엘도 쿠수마의 말이다. 그는 한국 스타트업이 인도네시아 시장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 이유로 “인도네시아 시장은 한류라는 만능 치트키가 적용되는 곳”이라는 점을 꼽았다. 그는 “아직 한국 스타트업을 직접 만난 적이 없다”며 “이곳 VC의 관심을 끌려면 엔터테인먼트 스타트업의 시장 진입을 추천한다”고 조언했다.

엘도 쿠수마와의 만남은 8월31일부터 9월2일까지 발리에서 열린 인도네시아 최대 스타트업 행사인 ‘넥시콘 인터내셔널 서밋 2022’가 계기가 됐다. 넥시콘(Nexticorn)은 다음을 뜻하는 넥스트(Next)와 인도네시아(Indonesia), 유니콘(Unicorn)을 결합해 만들었다. 2018년을 시작으로 해마다 열렸으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난 2년간 잠정 휴업한 상태였다.

2년여 만의 공백을 깨고 올해 화려하게 부활한 이번 행사에는 투자 유치를 원하는 380명 이상의 창업가와 글로벌 각지에서 온 150여 개의 VC 파트너들 간의 개별 미팅이 1700건 이상 성사됐다. 참가한 기업들은 모두 ‘시리즈 A’ 이상의 기업으로 사전 선별됐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는 올해 넥시콘 행사에 공식 초청을 받았다. 기업인 출신인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 간디 슐리스티얀토의 도움이 컸다. 디캠프와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은 국내 스타트업의 인도네시아 시장 진출을 돕기 위해 2018년 이후부터 긴밀히 협력해왔다. 이에 따라 디캠프는 디캠프 스태프를 중심으로 방문단을 꾸려 넥시콘 현장을 찾은 것이다.

올해 넥스콘 행사의 주제는 ‘웹3.0’이다. 넥시콘재단 이사장 루디안타라는 올해 주제 선정과 관련해 “아직 인도네시아의 웹3.0 관련 스타트업 수는 적지만, 우리 나라의 웹3.0 생태계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문의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발리는 한때 세계에서 가상화폐 결제가 가장 활발한 곳으로 ‘비트코인의 성지’로 불렸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암호화폐는 웹3.0이 지향하는 탈중앙화를 위한 핵심 기술이다.

세계 경제 규모 톱 10을 노리는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정부는 세계 경제 규모 10위권에 진입하기 위해 2025년까지 ‘유니콘 기업 25개 양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스타트업랭킹 발표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6번째로 많은 2419개의 스타트업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코트라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기준으로 동남아시아 전체 스타트업 자본의 74%가 인도네시아에 몰려 있다고 한다. 오토바이 택시 서비스로 출발한 ‘고젝’, 여행과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트래블로카’, 전자상거래회사 ‘토코피디아’ 등 이미 유니콘 기업도 여럿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다수의 유니콘 기업이 재등장한다 해도 낯설지 않다.

행사 첫째 날인 8월31일은 아침 8시부터 세션과 패널 토론이 시작돼 많은 사람으로 부산했다. 둘째·셋째 날에는 창업가와 투자자가 만나 실제적인 거래가 일어날 수 있는 매치메이킹 일정이 보장됐는데, 서로의 스케줄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미팅을 신청하더라도 거절당할 수 있고, 성사되더라도 30분 안에 서로의 니즈를 확인하고 궁금증을 해소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미팅 장소는 30분마다 옮겨야 해서 실제 미팅 시간은 20분 남짓.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고 정보무늬(QR코드) 명함을 준비해 다니는 창업자도 있었다.

창업자와 투자자를 위한 행사 ‘넥시콘’
인도네시아 창업자들은 기본적으로 영어가 유창하다. 여기에선 영어 실력이 곧 사회적 지위를 뜻한다고 한다. VC로부터 본인의 유능함을 인정받고 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영어가 필수다. 우리나라 창업자들의 학력 수준이 실리콘밸리와 비슷한 수준까지 높아진 것과 비슷한 사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1천 명 넘는 참가자의 미팅 스케줄과 각종 민원을 담당하는 보좌역인 ‘리에종’을 거의 1대1 수준으로 붙였다는 점이다. 채팅앱과 전자우편을 이용해 공식 행사 일정과 장소는 물론이고, 다음 비즈니스 미팅이 누구와 언제, 어디서 진행되는지까지도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쿠수마 매니저에 따르면, 한 명의 리에종이 2~3명의 스케줄을 담당했다고 하니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고급 인력이 최소 300명 이상 배치된 셈이다. 더 놀라운 건 이번 행사를 준비한 기간이 4개월밖에 안 됐다는 점이다.

이번 행사에서 디캠프 참가자들은 많은 인도네시아 스타트업을 만났다.
먼저 두잇하페(duithape) 대표 사라 데완토는 얼굴 스캔만으로 물품 구매 업무가 가능한 페이스 페이 시스템을 개발했다. 인도네시아는 인구 50%가 은행 계좌가 없다. 하지만 두잇하페 사용자는 휴대전화 번호를 은행 계좌처럼 사용할 수 있다. 더욱이 얼굴 인식 시스템을 사용함으로써 굳이 휴대전화를 소지하지 않아도 얼굴 스캔만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

2020년에는 3만9천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면서 35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고 했다. 올해는 일본무역진흥기구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 진출할 예정이란다. 일본은 인구의 97%가 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지만 고령 인구의 디지털 구매력이 떨어져 자사 서비스가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린스(Greens)라는 스타트업은 메타버스상에서 토지를 매입하면 실제 농지에서 농사해 농작물을 가게나 레스토랑에 판매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판매 수익은 수수료를 제외하고 투자자와 리테일러에게 돌려준다.

어윈 구나완 그린스 대표는 “인도네시아의 농업 종사자 중 70%가 연로하신 분으로 실제 농사할 수 있는 인구는 점차 줄고 있다”며 “농가구 소득을 늘리고 젊은이의 관심을 잡기 위해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베니바이크 기업은 지속가능발전목표(SDG)와 환경·사회·거버넌스(ESG) 프로그램을 큐레이팅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관리 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창업자 피르도스 줄리 대표는 과거 3번의 엑시트(Exit·기업가치를 현금화하는 전략으로, 주로 인수합병과 기업공개가 있다)를 경험한 연쇄 창업가다. 그는 “최근 인도네시아 재무부가 새로운 탄소세를 도입하려 노력하는데 자국 내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이 탄소세를 내는 대신, 나무를 심는 등의 ‘블루 카본 이니셔티브’를 통해 이 비용을 상쇄시키는 방안을 정부에 제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 기고: 정신희 디캠프 커뮤니케이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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