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개국 정상들 “조코위 대통령과 양자회담 원한다”

2015년 4월 15일

(A2)kkk

16개국 정상들이 이달 열릴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일명 반둥회의)를 계기로 조코 위도도(이하 조코위)대통령과의 양자회담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일 이번 회의의 주최측인 루훗 빤자이딴(Luhut Panjaitan)은 행사 시작전인 17일 혹은 18일에 다수의 정상들이 조코위 대통령과 양자회담을 가질 것을 요청하였다 전했다.

하지만 이달 조코위 대통령의 일정이 빡빡한 관계로 이 회담들이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아르마나따 나시르(Armanatha Nasir)외교부 대변인은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처럼 대규모 세계적 행사를 앞두고 국가정상들이 양자회담을 가지는 일은 자주 있어왔다며 “각국 정상들은 이런 세계적 행사를 양국간 협력증진을 위한 양자회담의 기회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는 이달 19일부터 24일까지 자카르타와 반둥에서 비동맹 운동의 시발점이 된 지난 1955년의 반둥회의를 기념하기 위해 제16차 아시아아프리카(AA) 회의, 반둥회의 60주년 기념식, 비즈니스서밋, 장관급 회의 등 다양한 국제 행사를 연다.

비즈니스서밋을 통해 조코위 대통령은 국내 투자문제에 관해 논할 것으로 보이며 국내 의류, 전자기기, 신발 시장의 확대 역시 역설할 예정이다.

올 해 회의의 목표는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국가들간의 좀 더 견고하고 새로운 협력을 위한 반둥메시지의 전달, 전략적 파트너십의 구축, 팔레스타인 독립에 대한 지지선언이다. 반둥메시지는 개도국 사이의 연대와 단결, 자주와 독립, 중립주의, 세계 평화 등 제 1차 AA 회의인 반둥회의의 정신을 기리는 선언이 될 전망이다.

올 해 회의에는 아베 신조 일본총리,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을 비롯해 25개국의 정상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불참이 예상된다.
정부는 자카르타와 반둥, 두 곳에서 열리는 회의와 기념행사를 성공적이고 안전하게 치르기 위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행사 기간에 치안 유지, 테러 방지를 위해 군 병력을 동원하기로 하는 등 준비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다.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일명 반둥회의)란?
1955년 4월18일 자와 섬 자바바라트주(州)의 주도(州都)인 반둥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29개국 대표단이 모여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는 일명 ‘반둥회의’라고도 불린다.

이 국제 회의는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미얀마, 인도, 파키스탄, 다섯 나라의 발기로 소집됐다.
24일까지 계속된 이 회의에서 세계 인구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참석자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나라들 사이의 긴밀한 관계 수립을 모색하고 냉전상황 속에서 이들 나라의 중립을 선언하는 한편 식민주의의 종식을 촉구했다.

이 회의는 수세기 동안 서유럽과 북미 열강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에 시달려온 아시아 아프리카 민중이 외세에 대한 저항을 집단적으로 선언했다는 의미를 지녔다.

이 회의를 통하여 아시아·아프리카는 서로 연대하기로 합의하였고, 이 때 얻은 자신감은 곧바로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의 걷잡을 수 없는 독립으로 분출되었다. 아시아·아프리카의 이러한 자각은 미국과 소련 중심의 냉전 질서에 큰 타격을 주었다.

반둥회의에서는 식민주의 문제에 대한 토론의 결과로 서방 열강과 소련을 비판하는 선언문을 채택한 외에, 국제연합 헌장의 여러 원칙은 물론 그 전해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와 인도 총리 네루 사이에 합의된 평화5원칙을 통합해 ‘평화10원칙’을 선언했다.

‘반둥 10원칙’이라고도 부르는 이 선언의 내용은 기본적 인권과 국제연합헌장의 목적 및 원칙의 존중, 주권과 영토 보전의 존중, 인종 및 국가 사이의 평등, 내정 불간섭, 국제 연합 헌장에 입각한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의 존중, 대국의 이익을 위한 집단적 군사동맹에의 불참, 상호 불가침, 평화적 방법을 통한 국제 분쟁 해결, 상호 협력의 촉진, 정의와 국제 의무존중이다.

이 선언은 비동맹과 중립주의, 상호 협력 등의 정신을 담은 것으로 서방 자본주의 국가와 동방 사회주의 국가에 의해 양분되던 국제 정치 무대에 ‘제3세계’라는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알리는 것이었다.
반둥회의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주도되던 국제 무대에 많은 새로운 스타들을 탄생시켰다.

개최국의 이점을 십분 활용한 수카르노, 중국의 강경 이미지를 누그러뜨리는데 탁월한 수완을 보인 저우언라이, 반둥 선언의 기초 정신을 제공한 인도의 네루, 중동의 강력한 지도자로서 부상한 이집트의 나세르 등은 이 회의를 통해 국제적 인물로 떠올랐다.

그러나 반둥의 회의장에서 드러난 각국의 상이한 이해 관계는 곧이어 발생한 중국-인도 국경 분쟁, 중소 분쟁 등으로 심화됐고 결국 알제리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제2차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는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신생국의 수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 반둥회의를 계기로 등장한 ‘비동맹’ 그룹은 점차 세를 더해갔고 이들은 60, 70년대를 지나면서 국제 정치의 한 축을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