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의 美

내 아이 자제력 키워주기

(Tuesday, August 26, 2014)

장세라 41아동심리치료사 자카르타거주
[email protected]
http://blog.naver.com/sj2azure

과하면 부족한 것만 못하다. 절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넘쳐나고 풍요로운 오늘을 살고 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필요이상으로 많이 누릴 수 있는 시대.

음식의 풍요로 과체중을 걱정해야 하고, 물건의 풍요로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품질은 물론이고 디자인과 가격을 비교해가며 골라 선택할 수 있다.

넘쳐나는 것은 비단 물질뿐이 아니다.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 만큼, 더 많은 것을 남들보다 빨리 누려야겠다는 넘쳐나는 욕심에 사람들의 마음에서도 여유가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어 보인다.

돈이 가장 가치 있고 필요한 존재로 등극하고, 교육이 과열되고 있으며,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도 과잉육아가 번져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풍요의 시대에 ‘부족함’을 배우기란 쉽지 않지만, 과하면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듯 절제를 통해 덜어내는 연습을 하는 것은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과잉육아, 넘치게 주는 부모

아이는 하얀 도화지와 같다. 아이들은 스스로의 도화지에 각기 다른 그림을 그려나갈 권리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혹시나 내 아이가 스스로 그려나가는 그림이 별볼일 없는 그림일까 염려하는 마음에 부모들은 아이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대신 그림을 그려나간다.

어떤 부모는 과잉교육으로 아이의 도화지를 온통 영어, 수학 등으로 도배해 놓기도 하고, 어떤 부모는 지나친 간섭과 과잉보호로 아이 스스로 인생을 그려나갈 수 있는 능력을 도태시켜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과잉교육, 물질공세, 과잉보호를 통해 부모가 원하는 데로 부모가 채우고 싶은 것들로 도화지에 가득가득 그려 내다보면 아이는 스스로의 도화지에 인생을 그려나가고 싶은 욕구, 능력, 필요성을 상실하게 된다.

아이는 도화지를 채워나가는 즐거움과 뿌듯함을 느낄 수도 없고, 정체성을 잃어버리며, 부모를 되려 원망하게 된다.

과잉교육

상담실에 있다 보면 영어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을 종종 만나게 되었다. 영어유치원이 과도한 교육열을 자랑하는 엄마와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유독 경쟁이 심했다.

아이들은 나이에 비해 많은 학습능력은 가지고 있었지만, 대신 우울감, 경쟁에서 패배했을 때 느끼는 자괴감과 그로 인해 형성된 낮은 자존감, 이유 모를 분노 등을 느끼고 있었다.

과도한 교육은 아이들의 집중력을 흐리고, 오히려 학업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게 한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여러 번 반복해서 잘 해내는 과정을 통해 성공경험을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한데, 계속해서 자신의 수준보다 앞선 선행학습을 받아야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성공경험을 적게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아이들은 낮은 자아존중감을 형성하게 되기도 한다.

낮은 자아존중감을 가진 아이들은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부족해 또래관계에서 자신감이 없고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부모의 욕심에 의해 과잉교육을 받게 되는 아이들은 공부 밖에 할 줄 몰라 성적은 좋을 수 있으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분야에 소질이 있는지 알지 못해 훗날 청소년 혹은 성인이 되어 방황하기도 한다.

무조건 많이 교육시키기 보다 아이가 잘 하고 원하는 것을 향해 방향을 잡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들이 해주어야 할 역할이다.

물질공세

부모가 아이들에게 장난감이나 음식 등 모든 물질을 과잉 제공하면, 아이들은 처음에는 고맙게 여기고 기뻐하나 시간이 지날수록 당연한 것으로 인지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물질=부모의 사랑”이라는 잘못된 공식이 입력되어 혹시라도 부모가 물질을 풍족하게 제공해주지 않으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제공해주기가 수월하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더 크고 값비싼 물건들을 요구하므로 이를 모두 충족해주기 버거운 것도 문제이다.

어렸을 때부터 물질을 과잉제공 받던 아이들은 이미 “물질=부모의 사랑” 공식에 맞추어 생각하므로, 훗날 부모가 어떤 물건을 제공해줄 수 없게 되면 부모를 원망하게 되는 것이다.

물질의 소중함, 필요성 그리고 부족함은 글로써 배워 지는 것이 아니며, 부족함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자제력 혹은 절제를 가르치기란 어렵다.

반면, 부족함을 아는 아이들은 스스로 물건을 아끼고 절제했다는 부분에서 큰 성취감을 느끼고 물건을 아끼고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게 된다.

부모의 지나친 간섭과 과잉보호

부모의 지나친 간섭과 과잉보호는 아이들을 스스로 결정하기 두려워하는 우유부단한 아이로 성장하게 한다.

아이들이 충분히 스스로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뭐든지 부모가 보호하고 해결해 주다 보면 아이들은 독립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도태시키게 된다.

거기다 행여나 내 아이가 속상할까 아이가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에게 싫은 소리나 꾸중을 들으면 잘못 여부와 상관없이 싸우고 보는 엄마들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는 잘못된 부모의 양육태도 및 문제해결방식을 답습한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 아이가 잘 못했을 때 부모가 꾸짖으면 이에 반항하거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지나치게 간섭하는 엄마들은 아이들이 친구 또는 형제와 작게 싸우면 이에 지나치게 개입하여 중재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태도는 아이들이 스스로 갈등을 경험하고 해소할 수 없게 하고 대신 갈등이 있을 때 부모에게 중재를 요청하는 즉 고자질하는 아이로 키우기 쉽다.


 

 

절제 없는 과잉양육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점은 부모의 불안이 아이들에게 전달 되어 아이들도 양육과정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고 불안을 느끼고, 아이들이 자제력을 배울 수 없다는데 있다.

아이들에게 좋다는 교육과 물건은 계속해서 바뀌고, 사회에서는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권장한다. 풍요의 시대에 계속해서 과잉육아를 부추기는 사회를 뒤로하고 자제력을 발동시키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계속해서 덜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부모가 안정되어야 ‘절제’할 수 있고, 아이들 또한 그 부모 밑에서 ‘자제력’을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