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기회의 땅’으로 일컬어지는 동남아 시장을 무대로 은행판 한일전이 펼쳐지고 있다. 외국계 은행이라는 같은 조건에 현지 소매금융(리테일) 겨냥이라는 같은 공략을 내세운 한국 은행과 일본 은행 중 어느 쪽이 동남아 시장서 더 큰 웃음을 짓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4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동남아에 진출한 한국 주요은행들은 현지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 ‘소매금융 활성화’ 방안을 집중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은행의 해외 진출은 종래 현지에 나가 있는 자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업여신 영업에 편중됐으나, 동남아는 다른 나라보다 국내 기업 진출이 활발하지 않아서다.
또 동남아는 인터넷쇼핑과 온라인미디어, 공유서비스 등 디지털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 향후 현지 기업뿐 아니라 개인 고객의 금융수요가 더욱 증가할 시장으로 평가 받는다.
한국 은행들은 동남아에서 각자 가진 인프라에 맞는 소매금융 공략법을 세우고 있다. 신한은행의 경우 동남아 젊은층의 모바일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 현지 국민메신저 업체와 제휴를 맺고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신용카드 발급과 신용대출을 영업을 전개 중이다.
KB국민은행은 소액대출 현지 영업법인을 설립하고 주택금융에 특화된 점을 살려 현지 당국과 협력해 주택공금 정책지원, 주택금융시장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영업지점의 현지인 채용 비중을 높여 현지 시중은행들과 유사한 모습으로 꾸려가고 있으며 우리은행은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모바일뱅킹 등 비대면 채널을 중심으로 동남아 소매금융 사업의 고삐를 쥐었다.
동남아 시장을 잠식하기 위한 일본 은행의 움직임도 숨 가쁘다. 한국금융연구원이 공개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일본 은행은 동남아 현지 은행에 대한 출자 및 인수합병을 통해 소매 영업기반을 강화했으며 동남아 경제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근거로 동남아 신흥 경제권에 대한 대출을 늘리고 있다. 일본 중앙은행(BOJ)은 지난 3월말 현재 일본 은행들의 동남아 국가(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제외)들에 대한 대출 잔액은 약 1001억1000만 달러(약 120조8327억7000만원)로 최근 2년간 지속적인 증가세를 나타냈다고 발표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일본 은행들이 동남아에서 추구하는 영업전략의 특징으로 현지법인에 대해 적극적인 현지화를 도모하고, 감독당국의 정책과제인 금융포용과 성장산업 지원이라는 관점에서 상호 윈윈(Win-Win)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점을 지목했다.
동남아 시장 개척에 적극적인 일본 미츠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는 자회사가 독립적으로 영업전략 수립 및 심사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요하고, 본점은 주주로서 거버넌스 관리와 리스크 관리에만 주력한다. 또 출자관계에 있는 파트너뱅크 간 정보공유를 위한 자리를 정기적으로 마련해 영업 노하우를 공유하고, 동남아의 우수한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해 시장점유율 확대에 활용하고 있다. 일본 미쓰이스미토모파이낸셜그룹(SMFG)의 경우 인도네시아 자회사인 Bank BTPN이 수익성이 저조함에도 불구하고 서민에 대한 금융포용정책에 기여한다는 생각으로 이슬람금융 기법을 이용한 소액금융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일본 은행들이 동남아 소매금융 시장을 꿰차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다만 이들은 소매영업기반 확대를 위해 대출 재원인 예금 확보가 필요한 상태이며 이를 위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개인고객 편리성 향상,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기업과의 제휴로 결제니즈 확보 등 자금조달 능력을 키워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국 은행들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지속가능한 수익 모델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단순 법인 및 지점 설치가 아닌 현지통화 예금 수탁과 대출 제공, 파트너 은행과의 상호 거래처 지원 등 현지화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한금융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