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필리핀에서 11년 만에 사형제가 부활할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 하원은 3월 7일 본회의에서 찬성 216명, 반대 54명의 압도적 표차로 사형제 도입 법안을 의결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이 법안은 상원 의결을 거쳐야 하지만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을 지지하는 의원들이 과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상원을 통과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애초 하원에 제출된 법안은 21가지 범죄에 대해 사형제를 적용하는 내용을 담았으나 심의 과정에서 반역, 강간, 약탈 등 대부분을 제외하고 마약의 수입, 판매, 제조 등으로 축소했다. 사형 방법으로 교수형이나 총살, 독극물 주사를 명시했다.
하원이 사형제 적용 범위를 축소한 것은 국내 반발을 줄이며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 소탕 정책을 뒷받침하려는 것이다.
전 인구의 8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에서는 가톨릭계와 인권단체 등이 사형제 재도입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 사형제 부활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사형제를 부활해 매일 범죄자를 5∼6명 처형할 것”이라며 적극적인 사형 집행 의지를 밝혔다.
필리핀 경찰이 최근 새로운 마약단속 조직을 구성해 마약 소탕에 다시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사형제 부활까지 임박하면서 반발 여론이 다시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은 1987년 사형제를 폐지했다가 1993년 살인과 아동 성폭행, 납치 등 일부 범죄에 한해 부활한 뒤 2006년 다시 없앴다.
필리핀에서는 작년 6월 말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이후 7천 명 이상의 마약용의자가 경찰이나 자경단 등에 의해 사살되면서 인권 유린 비판이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