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동남아 등 대중 의존도 높은 국가들 참여…한중관계 추가부담 작아
美, RCEP 주도한 중국 맞서 IPEF로 ‘맞불’…”미 리더십 회복”
미국이 주도하고 한국 등이 참여하는 다자 경제협력체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14개 참여국이 공급망 협정을 타결했다.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과 맞물려 미국과 중국 양국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미국 주도 다자 협력체의 ‘공급망 합의’라는 점에서 향후 중국이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2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7일(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IPEF 장관회의에서 한국을 비롯한 14개 참여국은 공동 보도성명(Press Statement)을 내고 공급망 협정 타결을 선언했다.
지난해 5월 출범한 IPEF의 14개 참여국 간 첫 합의다. 공급망 분야의 첫 국제 협정이기도 하다.
참여국들은 공급망 위기 발생 때 참여국 정부로 구성된 ‘공급망 위기대응 네트워크'(Supply Chain Crisis Response Network)를 가동, 상호 공조를 요청하고 대체 공급처 파악, 대체 운송 경로 개발, 신속 통관 등 협력 방안을 협의하기로 의견을 같이했다.
또 공급망 협정에 따르면 IPEF 참여 각국은 공급망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조치를 자제하고, 투자 확대와 공동 연구개발(R&D) 등으로 공급선 다변화를 위해 노력한다.
이와 관련한 이행 상황 점검을 위해 14개국 정부 관계자로 ‘공급망 위원회'(Supply Chain Council)를 구성하기로 했다.
아울러 공급망 안정화에 필수인 숙련 노동자의 육성과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각국의 노동권 관련 현황을 파악하고 개선 사항을 발굴하기 위한 ‘노사정 자문기구’가 구성돼 사업장 현장 노사 상황을 점검하는 체계도 운영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IPEF 공급망 협정은 선진·개도국뿐만 아니라 자원부국과 기술 선도국 등 다양한 경제적 특성을 가진 국가가 함께 참여해 상호보완적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데 의의가 있다”며 “우리의 전략 파트너인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와 안정적 공급망을 바탕으로 실질적 경제 협력을 증진해 나가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부 당국자는 “IPEF 참여국들이 공급망을 훼손하는 경쟁은 하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공급망의 투명성을 높이는 노력을 한다는 데 합의한 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공급망 불확실성이 줄어들 것”이며 “우리 기업의 투자 여건 등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IPEF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주도로 지난해 5월 공식 출범했다. 미국과 한국, 일본, 호주,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싱가포르, 브루나이, 뉴질랜드, 피지 등 14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주도하는 등 인도·태평양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자, 미국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협의체로 인식되고 있다.
IPEF는 지난해 9월부터 ▲ 무역 ▲ 공급망 ▲ 청정 경제 ▲ 공정 경제 등 4개 분야에서의 협상을 이어왔고, 이 가운데 공급망 분야에서 먼저 참여국 간 합의가 이뤄졌다. 나머지 3개 분야 협상은 향후 계속 이어진다.
특히 미중 양국이 글로벌 공급망 대전을 펼치고 있는 만큼 이번 미국 주도의 공급망 합의를 놓고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합의에서 중국이 반발할 만한 요소는 없다. 특정국 배제를 목적으로 한 것도 없다”며 “중국은 우리의 중요 교역 파트너이자 투자 협력 파트너로, 긴밀한 관계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공급망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탈동조화(디커플링) 및 위험제거(디리스킹)에 주력하는 미국 입장에선 이번 IPEF의 ‘공급망 합의’가 대중(對中) 압박 동력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번 합의는 주로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회원국 간의 공동 노력 방향을 서술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평가된다. ‘위험제거'(derisking)나 ‘탈동조화'(decoupling) 등의 표현으로 중국 같은 특정국을 구체적으로 겨냥해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내용도 담기지 않았다.
G7은 지난 20일 히로시마 정상회의 직후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경제안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경제적 강압’ 대응 기구 창설, 중요 광물·반도체·배터리 등 중요 물자 공급망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또 IPEF에 대중 경제 의존도가 높은 나라가 다수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이번 ‘공급망 합의’ 수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IPEF에는 중국이 자국의 경제적 영향권으로 여기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 중 7개국이 참여한다. 더욱이 IPEF 참여국 14개국 중 10개국은 중국이 제1의 교역 상대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나갔고, 이는 역내에서 미국의 공백을 낳았다는 논란으로 이어졌다. 이후 중국은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주도하며 영향력 키우기에 나섰다.
아세안 10개국이 주축인 RCEP과 IPEF의 회원국은 상당 부분 중첩된다. 중국이 RCEP으로 먼저 다진 역내 통상 질서 주도권을 미국이 통상 규범의 틀을 바꾸는 IPEF를 활용해 다시 흔드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IPEF 출범 당시 “인도·태평양에서 미국의 경제적 리더십을 회복하고 중국의 접근법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의 발언은 미국 정부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
4개의 분야 중 이번에 타결된 공급망 외에도 ▲ 무역 ▲ 청정 경제 ▲ 공정 경제 영역에 관한 협상이 남았다.
이들 분야에서는 낮은 수위 합의로 마무리된 공급망 분야와 달리 역내 경제 질서에 실질적 변화를 이끌 합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우선 무역 분야에서는 무역 원활화, 디지털 경제, 환경, 노동, 농업, 투명성 등 9개 소주제(챕터)에 관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청정 경제 분야에서는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친환경 규범 마련 및 협력 사업 발굴이 논의된다. 각국이 탄소중립 전환에 속도를 내면서 전 산업 지형에 큰 변화가 초래되는 상황과 맞물려 IPEF 진영 안에서 굵직한 경제협력 사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협상 추이가 주목된다.
공정 경제 분야는 반부패·조세 투명성 확보 등을 다룬다. 일각에서는 서방 선진국에 유리한 이 같은 새 규범 논의가 실질적으로 중국 압박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c) 연합뉴스 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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