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즉석라면’,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1위와 2위’, ‘300여 종족의 다양한 전통음식’ 등은 인도네시아 음식을 지칭하는 화려한 수식어이다. ‘인도미’(indomie)는 원래 제품명이지만, 이제는 인도네시아 라면의 보통명사로 사용된다.
전세계 60여개 국가에서 연간 15억개 이상의 제품이 팔린다. 른당(rendang)과 나시고렝(nasi goreng)은 <시엔엔>(CNN)에서 진행한 인기투표에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선정된 적도 있다. 발리인의 전통음식인 바비 굴링(babi guling), 미낭카바우인의 전통음식인 아얌 굴라이(ayam gulai) 등 인도네시아에는 각 종족을 상징하는 다양한 음식의 세계가 펼쳐진다.
하지만 위의 음식들은 대체적으로 한국인에게 낯선 음식이다. 베트남과 태국(타이) 등 다른 동남아시아의 음식이 우리의 식생활 깊숙이 자리잡은 것과 대조적이다. 베트남 음식이 우리에게 친숙하게 된 것은 한해 500만명 가까운 한국인의 베트남 여행, 많은 결혼이주여성의 한국 정착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또 태국 음식은 미국뿐 아니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끄는 등 이미 세계화됐기에 한국에서도 비교적 쉽게 자리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에 반해 인도네시아 음식은 한국에서 대중화되기에는 여러가지 제약이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에게 인기 있는 식재료 중 하나인 돼지고기가 종교적 이유로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욱이 무슬림에게 허용되는 ‘할랄’(halal)은 단지 돼지고기 금지에 머무르지 않고 요식산업 전 분야를 지배한다. 현지 요리사의 채용과 재료 수급의 문제는 결국 식당 운영비 상승 등으로 이어져 대중화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1667년부터 네덜란드가 향신료 독점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 음식 역시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문화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특히 다종족 국가라는 인도네시아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는 한 방편이다. 인도네시아 음식의 그러한 다양성과 보편성을 이해하는 핵심 식재료는 향신료와 쌀이다. 그중 맛의 향연인 향신료는 인도네시아에는 역사적 상처이기도 하다.
16세기 당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었다. 두 국가의 부의 원천은 육두구 500g이 황소 7마리의 가치를 했던 향신료 무역이었다. 15세기 오스만튀르크가 대제국을 건설함으로써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기존의 실크로드 무역로가 훼손되고, 유럽의 향신료 가격이 상승했다. 이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가는 해상 무역로를 개척하였고, 각각 믈라카와 필리핀을 점령했다. 동서 교류의 서막을 알린 ‘대항해 시대’의 시작이었다.
여기에 네덜란드가 가세했다. 당시까지 네덜란드는 부르고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 에스파냐의 지배 아래 있던 소국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종교개혁과 근대 자본주의를 받아들임으로써 1588년 ‘네덜란드 연방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정치적인 안정을 찾은 이후 네덜란드는 지중해와 북해를 연결하는 무역항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100년간 독점한 향신료 무역에 뛰어들었다.
향신료는 ‘향기 나는 식물’의 씨앗, 열매, 뿌리, 줄기, 꽃, 나무껍질을 말린 후 사용한다. 시나몬(cinnamon), 정향(clove), 흑후추(black pepper), 육두구(nutmeg), 고추(chili pepper)는 유럽인에게 음식의 맛과 향 증진, 종교적인 의례, 의술에 사용되는 신비의 식물이었다. 특히 인도네시아 말루쿠(당시는 몰루카스)군도의 반다제도는 정향과 육두구의 주요 생산지였다.
향과 최음성, 치유력 때문에 황금보다 귀한 향신료로 알려진 육두구의 가치를 일찍이 알아본 포르투갈은 1511년 말루쿠군도를 정복했다. 이후 1599년 네덜란드가 지배권을 차지했으며, 1603년에는 영국이 반다제도의 두 섬을 점령했다. 말루쿠군도를 둘러싼 네덜란드와 영국의 치열한 경쟁 끝에 1667년 맺어진 브레다 조약(Treaty of Breda)을 기점으로 네덜란드는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게 되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말루쿠의 암본섬, 바타비아, 믈라카, 인도, 아라비아와 페르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향신료를 공급함으로써 네덜란드를 강대국의 반열에 오르게 하였다.
유럽인에게 아시아로부터 오는 향신료는 맛과 향기의 쟁취이자,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자, 이교도로부터 무역권을 획득한 종교적 승리의 역사였다. 하지만 1603년 12월18일 로테르담에서 출항한 18척의 배는 인도네시아 식민 역사의 시작이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네덜란드령 동인도’로 이어진 350년의 식민통치는 신의 선물인 향신료가 가져온 비극이었다.
고추장 양념과 비슷한 삼발
단맛과 쓴맛을 동시에 내는 정향과 육두구는 음식의 맛과 향을 살리고, 중세 시대에는 페스트 치료에 쓰일 만큼 항균 효과가 탁월하다고 알려졌다. 향신료는 식민의 역사라는 비극을 안겨주었지만, 이후 인도네시아 음식과 향을 알리는 맛의 전도사가 되었다.
인도네시아 대표 음식 중 하나인 른당은 다양한 향신료가 사용되는 소고기 요리다. 맛에 대한 감각의 범위가 커질수록 더 맛있게 느껴진다는 연구처럼, 향신료는 맛의 복잡성을 증대시킴으로써 원재료의 맛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른당은 서부 수마트라 지역의 미낭카바우족의 전통 요리로 알려졌지만, 현재는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국가 음식의 반열에 올랐다. 마늘, 생강, 샬롯, 홍고추, 코리앤더 씨앗, 정향, 백색 통후추, 갈랑갈, 육두구 등 다양한 종류의 향신료가 사용된다.
우선 준비된 향신료를 믹서기에 곱게 간 후 기름기가 없는 소고기 안심 부위와 함께 볶는다. 이후 으깬 레몬그라스로 향을 더한다. 물과 코코넛 밀크를 넣은 후 은근한 불로 오랜 시간 졸여주면 요리는 완성된다. 우리네 소고기 장조림이나 갈비찜과 유사한 모습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물기가 없는 른당을 최고로 여긴다. 물기를 최대한 줄임으로써 소고기를 좀 더 부드럽게 하고, 향신료의 맛과 향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완성된 른당은 밥, 삼발(sambal) 등과 함께 먹는다. 삼발은 우리의 고추장과 같이 양파, 소금, 고추, 마늘이 들어간 일종의 양념장이다. 인도네시아인의 식탁에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양념으로 가정마다 고유의 삼발 제조 비법을 가지고 있다. 삼발은 나시고렝, 미고렝 같은 볶음요리나 이칸고렝, 아얌고렝 등 튀김요리의 양념장으로 활용된다. 피자나 감자튀김 등을 먹을 때 케첩 대신 삼발과 함께 먹기도 한다. 향신료는 인도네시아 요리의 특징 중 하나인 다채로운 ‘양념’(bumbu)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문화적 다양성 혹은 문화적 혼종성이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사회가 공유하는 문화적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의 답은 쉽지 않다. 다양한 종교, 종족, 언어가 시대와 환경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식생활 측면에서만 한정하면 벼농사 문화에서 비롯된 쌀(beras)은 인도네시아 대부분의 종족과 지역이 공유하는 문화적 실체로 볼 수 있다. 특히 쌀은 단순한 음식을 뛰어넘어 신앙, 의례, 주거에 이르기까지 인도네시아인의 삶과 관련이 깊다. 고대 자바 시대부터 인도네시아인에게 쌀은 주식이자 종교이자 삶이었다. 인도네시아인에게 쌀은 신에게 바치는 정화와 풍요의 상징이며, 쌀의 신인 데위 스리(Dewi Sri)는 경외의 대상이다.
다국적 기업은 인도네시아 현지화를 위한 주요한 전략 상품 중 하나로 쌀을 활용하기도 한다. 케이에프시(KFC)와 같은 패스트푸드 업체에서 밥은 치킨, 콜라와 함께 세트 메뉴로 구성되어 ‘완전한 식사’, ‘건강한 식사’의 이미지로 활용된다. 비누, 샴푸 등 생활용품의 판매에서 쌀의 순백의 이미지가 차용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는 우리와 같은 쌀농사 문화권으로 동남아시아 국가 중 가장 넓은 2450만 헥타르에서 매년 3710만톤의 쌀을 생산한다. 한국의 평균 쌀 생산량이 350만톤이니,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인구 비율을 고려하면 인도네시아 쌀 생산량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인도네시아는 식량 자급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이웃 국가인 베트남과 태국에서 쌀을 수입하는 실정이다. 이는 오일팜, 고무, 커피, 야자, 카카오 등 식민지 시대부터 시작된 플랜테이션 산업 작물이 벼, 대두, 옥수수, 카사바 등 식량 작물을 여전히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쌀은 우리가 안남미라고 부르는 인디카 쌀이 주종을 이루고, 한국인이 주로 먹는 자포니카 쌀은 자바와 발리섬 일부 지역에서만 생산된다. 기후의 영향으로 쌀 생산은 해발 800m 안팎의 농업용수가 풍부한 지역에서 이뤄진다. 파종과 이앙은 4월에서 5월까지, 그리고 8월에서 9월까지 두번에 걸쳐 이루어진다. 수확 역시 7월에서 8월까지, 그리고 11월에서 12월까지 이루어진다. 모심기를 하는 논의 바로 옆에서는 추수를 하는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나시고렝은 한국에도 진출
인도네시아인은 전기밥솥이나 냄비에 쌀을 안친 다음 도중에 물을 버리거나 휘저으면서 끓이는 방식으로 밥을 짓는다. 쌀밥을 의미하는 ‘나시’(nasi)는 인도네시아인의 한끼 식사의 절반 정도 칼로리를 담당하는 주식이다. 인디카 쌀로 밥을 지으면 밥은 푸슬푸슬해지는데, 푸슬푸슬한 밥을 이용한 대표적인 음식이 나시고렝이다. 볶음밥으로 해석되는 나시고렝은 염소, 닭고기 등의 고기류를 양파, 마늘, 파 등과 함께 기름에 볶는다.
차갑게 식힌 밥을 넣어 볶다가 달콤한 간장소스인 케찹 마니스(kecap manis)를 넣는다. 매운맛을 첨가하거나 간을 맞추기 위해 삼발 등을 함께 넣고 볶기도 한다. 방송인이자 유명 요리연구가인 백종원씨는 나시고렝을 “고깃집에서 밥 볶아 먹을 때 밑에 있는 누룽지까지 긁어서 섞은 볶음밥 같다”라고 평가한다.
조리된 나시고렝에는 오이, 토마토, 달걀프라이, 새우과자의 일종인 크루푹(kerupuk), 삼발이 함께 나온다. 나시고렝의 조리법은 종족별, 지역별, 개인별 기호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하는데, 닭고기나 소고기 대신 돼지고기, 파인애플, 정어리, 새우 등을 넣기도 한다.
인도네시아 음식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설고, 한국에서는 전문음식점을 찾기도 어렵다. 경기도 안산의 다문화거리에 인도네시아 식재료를 판매하는 큰 규모의 슈퍼와 식당이 있고, 서울의 망원동, 이태원 등 다국적 음식 거리가 조성된 지역이나 부산, 인천, 대전, 대구, 광주 등 대도시에 한두곳의 인도네시아 음식점이 운영되는 정도다. 베트남과 태국 관련 음식점에서 나시고렝을 판매하기도 한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공통적으로 쌀을 주식으로 하며, 곁들여 먹는 양념도 고추장이나 젓갈류(한국)와 삼발(인도네시아)이 비슷하다. 음식을 볶거나 삶을 때 마늘과 고추도 양국에서 빠지지 않고 사용된다. 한국인에게 인도네시아 음식이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유사함이 엿보이는 지점이다. 그동안 인도네시아 음식 대중화의 걸림돌로 작용했던 종교적 문제는 할랄 음식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무슬림의 할랄 음식은 동물권과 생태주의 가치를 추구하는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지속가능한 발전과 윤리적 소비를 위한 실천과도 연결된다. 어느새 이국적인 향이 한국인의 곁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 <한겨레/ 기고: 정정훈,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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