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랑이도 마른 평원의 건기
자바의 들판
사방이 지평선인 드넓은 정원
듬성듬성 간이휴게소 같은 뽄독은
낮이면 개구쟁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밤이면 별빛 총총한 하늘 아래
바람 쐬는 노인들이 쌈지 담배연기로
정담을 피워 내는 곳
우기의 자띠 숲이 푸르러 지면 고깔모자를 쓰고 벼를 심던 아낙네가
정오의 내리꽂는 작살 같은 햇살을 피해
서방님 무릎을 빌려 뽄독은 나른하다
황금 들녘 추수기엔
허수아비들의 한바탕 흥타령이 끝나야
참새같이 조잘대는 아낙네들 수다로
벼 이삭을 따고
야자수 뒤로 멀어지는 놋양푼 보다 큰 태양은
들녘을 온통 붉게 불 지르고
지평선 뒤로 숨을 것이다
< 시작 노트 >
스마랑에서 자카르타행 시외 버스를 탔다. 자바의 평원에는 풍요롭고 평화로운 들녘의 풍경이 펼쳐진다. 끝없는 들판의 농가를 배경으로 군데군데 원두막 같은 뽄독이 그림 같고 어릴 적 저녁연기 피는 논길로 돌아오는 아이들을 부르는 어머니 목소리가 아련히 들릴 것 같다. 우기든 건기든 옷만 갈아입을 뿐 풍요가 넘치는 풍경이다. 자바의 드넓은 들판은 허함이 아니라 욕심 없어 여백이 많고 온화한 행복이 여민 곳이다. 이런 곳을 8시간이나 달리며 느끼는 마음은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