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4년

정 주 진
(21세기전략연구원 기획실장·인천대학교 겸임교수)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이다. 헌법이 제정된 이래 이것은 한 번도 수정되지 않았고,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를 바탕으로 대법원은 1961년 ‘북한지역도 대한민국 영토에 해당되고 대한민국의 주권 범위 내에 있다’고 판결했다. 그 동안 남북관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이 판례가 번복된 적은 없다.

이에 따라 북한지역에서 정부를 참칭하고 있는 북한정권은 반국가단체이고, 현재 그 수괴는 김정은이다.
그리고 그는 북한주민의 자유로운 투표를 거쳐 선출된 것이 아니라 기득권 세력의 추대형식으로 옹립됐다.
비록 전근대적 세습이었지만 우리는 한편으로는 그가 집권 후 새로운 변화가 오길 기대했다.

그가 어린 시절 유럽에서 서구식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과거와는 다른 통치행태를 보일 것이라 예상했다.
또한 그는 6-25남침 등 과거 반민족행위에 대해 직접적 책임이 없기 때문에 개혁·개방, 민주화라는 세계사적 조류에 어느 정도 호응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그는 지난 4년 간 우리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김일성·김정은과 마찬가지로 외부로 통하는 문을 걸어 잠근 채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자신의 정치적 후견인이었던 고모부 장성택을 공개 처형한 것이다. 유교적 관점에서 볼 때 친족을 살해하는 것은 극악의 패륜이다.

김정일이 김일성 사후 3년 동안 기다리며 유훈 통치를 벌인 것은 유교의 3년 탈상을 의식한 것이다. 봉건적 풍습을 살려 세습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고육책이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3년은커녕 3개월도 참지 못했다. 처단의 수단 또한 고사총과 화염방사기가 동원되는 등 역사상 전례를 찾아 보기 어려운, 문명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공포 통치를 휘두르고 있다.

나치가 유태인에게 저질렀던 만행을 같은 민족에게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중국의 현자 노자는 이러한 공포통치를 삼류정치로 치부했다. 최고의 정치는 임금이 있는 듯 없는 듯 백성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 다음이 선정을 베풀어 백성이 임금을 칭찬하게 만드는 것이다.
3등급인 공포통치는 임금을 두렵게 만드는 것이다. 어진(仁)과 의리(義)로 세상을 다스리지 못하고 법과 형벌로만 세상을 다스리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를 두려워한다.

이 공포의 끝이 어떻게 끝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

인류문명이 생긴 이래 공포와 폭압으로 권력을 지탱한 세력은 오래지 않아 모두 비참한 말로를 보였다. 피비린내 나는 공포가 두려워 지금은 침묵하고 있으나 처형의 칼날이 자기를 겨눈다고 판단될 때 비슷한 처지의 고위급 간부들과 함께 김정은 제거를 시도할 인물도 나올 수 있다.

지난 10월 김정은이 시찰할 예정이었던 원산 갈마 비행장에서 폭발물이 발견되어 현지지도가 전격 취소된 것이 그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북한에도 삼류정치를 끝내고 한반도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나타날 때가 됐다. 창조적 소수는 새로운 문명을 일으키는 선도자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새로운 문명이 일어날 때는 항상 창조적 소수가 있었다고 갈파했다. 이것이 전세계 21개 문명의 흥망을 해부하여 얻은 그의 통찰이다.

오늘날 최고의 문명가치로 평가 받는 민주주의, 인간의 존엄성, 시장경제 메커니즘을 통해 북한지역의 변화를 유도할 창조적 소수가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야 할 시기가 멀지 않았다.

김정은의 극악무도한 패륜과 광기를 끝내고 북한지역을 문명사회로 바꿀 창조적 소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언제 어떻게 찾아올 것인가? 21세기도 벌써 10년이 넘은 이즈음 사뭇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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