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5일은 보병의 날이다. 이 날은 수디르만 장군이 이끌던 인도네시아 육군 부대가 중부자와 주 암바라와를 점령했던 연합군과의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지정됐다. 하지만 1999년 대통령령 163호 의해 보병의 날은 ‘Hari Juang Kartika (별 싸움의 날)’로 바뀌었다.
1942년 3월 1일에 인도네시아에 쳐들어온 일본 군대가 네덜란드를 정복한 다음, 네덜란드 군과 일반인들은 포로로 암바라와 포로 수용소에서 구금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군에게 항복하자 인도네시아는 이 날을 계기로 17일 독립을 선언했다.
연합군은 일본이 항복하자 암바라와 포로수용소에 있던 네덜란드 군이나 일반인 포로 석방을 비롯한 전후 처리를 위해 인도네시아로 왔다. 이 때 네덜란드 군이 연합군과 함께 1945년 10월 20일 스마랑을 통해 인도네시아로 왔다. 연합군은 암바라와 포로수용소에서 네덜란드 군인과 일본 군인들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여 전 중부자와 주지사 웡소네고로가 기쁘게 환영했다.
웡소네고로 주지사는 연합군의 원활한 전후 처리를 위해 도움을 줄 것이라고 약속했으며, 연합군 사령관은 인도네시아 통치권을 침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암바라와 포로 수용소에 도착한 연합군은 포로들에게 흉기를 주고, 연합군대과 함께 있던 인도네시아 군인들에게서 무기를 압수했다.
이에 분개한 수디르만 장군은 1945년 12월 11일 연합군에게 저항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다음 날 새벽 4시 30분 수디르만 장군과 그의 부대가 연합군 부대를 에워싸고 공격을 개시했다.
이 전투에서 대포와 수류탄, 소총 등 발사 소리가 울려 퍼지는 대규모 전투가 발생되었다. 이 전투는 결국 공격 이틀 만에 연합군의 후퇴라는 쾌거를 얻었다. 그러나 연합군은 암바라와를 떠나면서 민가를 태우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전투가 시작된 지 제3일 되던 날, 연합군은 암바라와에서 완전히 퇴각했다. 이 때의 시간이 1945년 12월 15일 오후 5시 30분이었으며, 이 시간을 기점으로 암바라와를 완전히 되찾았다. 이것을 기념하여 12월 15일을 보병의 날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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