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자카르타 역사를 간직한 Kota Tua

올드 바타비아(Batavia Lama)라고도 알려진 Kota Tua Jakarta는 자카르타 북부와 서부 자카르타에 걸쳐 있는 1.3제곱킬로미터 면적이다.

16세기 유럽 항해자들은 인도네시아를 ‘아시아의 보석 Permata Asia’, ‘동양의 여왕 Ratu dari Timur ‘이라고 불렀다.

– 자야카르타 (Jayakarta 1526 – 1619)
1526년 데막 술탄국이 파견한 파타힐라(Fatahillah)는 힌두 왕국인 파자자란(Pajajaran) 아래 있던 순다 끌라파(Sunda Kelapa) 항구를 공격했다.

– 자야카르타 멸망과 바타비아의 탄생
1619년 Jan Pieterszoon Coen이 지휘하는 동인도제도VOC(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가 도시를 파괴하면서 자야카르타 운명은 급격히 바뀌었다.

1년 후, VOC는 네덜란드 민족의 조상인 ‘Batavieren’을 기리기 위해 ‘Batavia’라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 이 도시는 현재 파타힐라 광장으로 알려진 Ciliwung 강의 동쪽 기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 바타비아의 성장과 변화
바타비아 주민을 “바타비아넨(Batavieren)”으로 불렸으며, 나중에 “버타위” 부족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635년에 바타비아는 찔리웅 강 서쪽 기슭까지 확장되었다. 이 도시는 요새(Kasteel Batavia), 성벽 및 주변 운하를 갖춘 유럽 건축 양식으로 설계되었다.

1650년에 바타비아 건설이 완료되었고 동인도 VOC 본부가 되었다. 그러나 도시 내의 열악한 위생 상태로 다양한 열대 전염병이 발생하여 운하를 건설했다.

1835년과 1870년에 전염병이 발생한 후 많은 주민들이 도시 남쪽, 현재 벨테브레덴(메르데카 광장 주변)으로 알려진 지역으로 이주했다. 그 후 바타비아는 네덜란드 동인도 제도의 행정 중심지로 발전했다.

– Jakarta 탄생
1942년 일본 점령 기간 바타비아는 Jakarta로 바꾸었다. 1972년 자카르타 주지사 알리 사디킨(Ali Sadikin)은 Kota Tua를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법령을 발표했다.

이 결정의 목적은 도시의 건축 역사를 보호하고 보존하는 것으로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의 건물은 몇 채만 남아 있다.

▲ Kota Tua에 있는 Taman Fatahillah 광장의 동인도제도VOC 총독부
▲ Kota Tua에 있는 Taman Fatahillah 광장의 동인도제도VOC 총독부

Kota Tua Jakarta는 서부 자카르타 타만사리(Taman Sari) 구역에 위치하고 있다. 여행자들은 트랜스자카르타 버스, 열차 KRL 통근선, MRT 자카르타 등 다양한 교통 수단을 이용해 Kota Tua까지 갈 수 있다.

여기서 파타힐라 박물관, 와양 박물관, 인도네시아 은행 박물관, 파타힐라 공원, 토코 메라 (Museum Fatahillah, Museum Wayang, Museum Bank Indonesia, Taman Fatahillah, Toko Merah)등과 같은 많은 흥미로운 관광지를 찾을 수 있다.

네덜란드 스타일의 건물들로 인해 자카르타 구시가지는 아름다운 포토 스팟을 찾도록 자전거 대여 서비스도 있다. (생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