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는 미국행, 러는 중국행…전쟁 300일 맞아 ‘장기전 대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부터) (CG)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300일째를 맞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이 각각 중국과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 관계를 다지며 본격적인 장기전에 대비하는 모양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전격적으로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같은 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측근을 특사로 중국에 보냈다.

고전 중인 러시아를 더욱 몰아붙여 전쟁의 주도권을 확실히 가져오기 위한 젤렌스키의 포석에, 푸틴 대통령도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지속적인 국방력 강화 계획을 밝히며 물러설 뜻이 없음을 드러냈다.

전쟁 장기화에 따라 평화회담에 대한 국제 사회의 요구가 조금씩 커지고 있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외교전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당장은 힘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동부 격전지 바흐무트 방문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동부 격전지 바흐무트 방문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우크라 “무기, 더 많은 무기가 필요해”

전쟁 중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처음으로 외국행에 나선 젤렌스키 대통령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이번 전쟁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의 지원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것에 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은 로이터에 보낸 서면 논평에서 “무기, 무기, 더 많은 무기가 필요하다. 어떤 무기가 필요한지 직접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이 확전이 아니라 러시아의 군사력 감소로 이어질 것임을 설명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를 위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회담하고 미 의회에서 연설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초당적 지원을 요청할 예정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첨단 방공 시스템인 패트리엇 미사일을 포함해 18억 달러(약 2조3천억 원) 규모의 추가 지원을 할 것이라고 외신은 보도했다.

특히 이번 방문은 내년 초 연방의회 임기 시작을 앞두고 이뤄져 주목된다.

내년 1월 3일 출범하는 118대 연방의회에서는 기존의 민주당 대신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이 될 예정으로, 공화당은 우크라이나에 ‘백지수표’를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미 의회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450억 달러(약 26조 원) 규모의 긴급 원조안을 검토 중인데, 의회의 주도 세력 교체 직전에 대통령 직접 미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면 원조안의 처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방미 전날에는 이번 전쟁 최대 격전지가 된 동부 전선의 바흐무트를 전격 방문하며 서방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바흐무트는 동부와 남부 전선에서 대패한 러시아가 자존심을 걸고 수개월째 총력전을 펼치는 곳이다.

그런 곳을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접 방문한 것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세를 물리칠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바흐무트 병사들이 직접 서명한 우크라이나 국기를 바이든 대통령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측근과 회담하는 시진핑 中 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 측근과 회담하는 시진핑 中 주석 (베이징 로이터=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21일 베이징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 회의 부의장과의 회담 중 악수하고 있다. 이날 시 주석은 “중국은 러시아 측과 함께 새로운 시대의 중러 관계를 지속해서 발전시키고 글로벌 거버넌스를 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공동 추진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2022.12.21 

◇ 러, 중국에 특사 보내 “관계 발전 희망”

수세에 몰려 있는 푸틴 대통령은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을 특사로 중국에 보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면담을 통해 러시아와 중국 간 전략적 협력 강화에 뜻을 모았다.

시 주석은 “양국이 새로운 시대의 포괄적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양측이 각자의 국정에 기초한 장기적인 전략적 선택”이라고 말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도 양국이 외부 압력과 불공정 조치에 공동으로 저항해왔다며 “포괄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푸틴 대통령은 메드베데프 부의장을 통해 시 주석에게 양국 간 협력과 지속적 관계 발전에 대한 의지를 담은 친서를 전달했다고 러시아 국가안보 회의 비서실이 전했다.

또한 양측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포함해 국제 현안들을 논의하고 대외정치적 입장을 조율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러시아는 이날 중국 수출용으로 개발한 이르쿠츠크주의 코빅타 가스전 가동 기념식을 열었다.

코빅타 가스전은 매장량 1조8천억㎥로 동시베리아 최대 가스전으로, 러시아는 중국 수출용 가스관 ‘시베리아의 힘’과 이곳을 잇는 가스관도 추가로 건설했다.

이와 함께 푸틴 대통령은 이날 국방부 이사회 확대 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직접 챙겼다.

그는 핵전력 전투태세 강화와 함께 군대에 대한 무제한 지원 방침을 밝히는 등 사실상 장기전 체제에 돌입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미 지난 7일 인권이사회 회의에서 “특별 군사 작전이 긴 과정이 될 수 있다”며 전쟁 이후 처음으로 장기전 가능성을 직접 언급했다.

쇼이구 국방장관 역시 내년에도 전쟁이 계속될 것임을 확인하는 한편 전체 병력 규모를 최대 150만 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공개했다.

러시아는 지난 8월에도 대통령령 개정을 통해 병력 규모를 101만 명에서 내년부터 115만 명으로 늘리기로 한 바 있다.

연방보안국 기념일 맞아 화상 연설 참여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연방보안국 기념일 맞아 화상 연설 참여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

◇ 러·우크라 대화 조건 ‘평행선’에 평화협상 ‘난망’

이처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전쟁 장기화에 대비하는 모습이지만, 세계적 인플레이션과 에너지난, 경기침체 우려 탓에 협상론도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번 젤렌스키 대통령의 방미 중에도 이와 관련한 물밑 논의가 있지 않겠냐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우크라이나의 강경한 태도 탓에 공개적으로 거론하기는 어렵겠지만, 서방 입장에서도 전쟁 피로감을 고려해 ‘플랜B’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시 주석도 이날 메드베데프 부의장과 면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평화적 해결책을 강조했다.

그는 중국이 일관되게 평화회담을 촉구해왔다면서 “당사자들이 이성적 태도로 자제하고, 전면적인 대화를 전개하며 정치적 방식으로 안보 분야의 공동 관심사를 해결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당장 평화회담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평화회담 필요성 자체에는 공감한다고 하지만 대화 조건에 이견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철수와 전쟁 피해 배상 등을 요구하는 반면, 러시아는 철수는 있을 수 없는 일로 못 박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추가 지원을 여전히 기대할 수 있고, 러시아 역시 15만 명 규모의 동원병이 대기 중인 등 양측 모두 여력이 있다는 점에서 협상을 위한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역시 협상은 우크라이나가 결정할 문제로서 협상을 위해 젤렌스키 대통령을 압박할 뜻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c) 연합뉴스 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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