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국정과제인 ‘신남방정책’이 인도네시아 등 ‘해양 5개국’과의 협의체 구성으로 업그레이드된다. 코로나19(COVID-19) 영향으로 ‘볼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책의 ‘고도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차기 정부에 신남방정책 과제를 인수인계하는 의미도 담겼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오는 11월 예정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를 계기로 인도네시아•싱가포르•말레이시아•필리핀•브루나이와 외교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다. 아세안의 바다를 끼고 있는 5개국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취지다.
아세안 정상회의는 현재 화상회의 방식으로 진행될 게 유력한 상태이지만 베트남 정부는 대면 회의 가능성을 놓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할 지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
김건 외교부 차관보가 오는 24일부터 29일까지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를 연속 방문하는 것도 ‘해양 5개국’과 협의체 구성을 위한 사전작업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구 2억명의 인도네시아와 강소국 싱가포르는 ‘해양 5개국’ 중에서도 핵심 파트너가 될 게 유력한 곳이다.
당초 문 대통령은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 계기에 ‘신남방정책 2.0’ 비전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올해까지 한-아세안 교역규모 2000억 달러를 달성하고, 보다 공격적인 목표를 제시해 신남방정책의 규모를 중국과의 교역액 수준(2500억 달러)으로 높이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발목을 잡았다. 팬더믹(대유행)으로 국제교역이 얼어붙음에 따라 올 상반기 한-아세안 교역규모가 691억 달러 수준에 그쳤다. ‘신남방정책 1.0’의 목표였던 2000억 달러 대비 절반 수준의 성과가 예상됨에 따라 전략을 ‘비전 2.0 제시’에서 ‘고도화’로 수정했다.
이 ‘신남방정책 고도화’의 핵심 과제로 마련한 것이 인도네시아 등 해양 5개국과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아세안 10개국을 ‘메콩 5개국(베트남·태국·미얀마·캄보디아·라오스)’과 ‘해양 5개국’으로 나눠 빠짐없이 공략한다는 의미가 있다.
메콩 5개국의 경우 이미 협의체를 만들어 협력기금을 조성하고, 한-메콩 정상회의까지 개최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의 제안 이후 해양 5개국이 긍정적으로 호응한다면, 같은 프로세스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 9일 한-아세안 외교장관 회의에서 강경화 장관이 ‘한-해양동남아 협력 체제 추진’의 운을 띄운 상태다.
신남방정책의 약점이었던 ‘베트남 의존도’를 낮추는 효과 역시 기대된다. 한-아세안 교역 규모에서 베트남이 차지하는 비중은 40% 수준에 달한다. 아세안에서 우리와 유일하게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인도네시아 등과 교역이 늘 경우, 이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단 계산이다.
제안은 문재인 정부가 하지만, 결실은 차기 정부가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한-해양 5개국 정상회의의 경우 순조롭게, 빨리 진행된다해도 2022년쯤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2022년 5월9일까지다.
신남방정책의 ‘성과’와 ‘과제’를 모두 차기 정부에게 물려주는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외교 영역을 확보할 수 있는 신남방정책을 차기 정부에서도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는 게 문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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