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부리는 ‘라벨 갈이’, 인도네시아 2위… 단속 너머 ‘제조업 생태계 복원’ 답없나

섬유제품 라벨들

최근 5년간 적발 규모 2천억 육박… 중국산이 95% 압도적
인도네시아·베트남산 적발 잇따라… ‘메이드 인 코리아’ 신뢰 위협
“단속 만능주의 벗어나야… 외국인 인력 개방 등 제조 기반 확충 시급”

최근 5년간 한국내 유통 시장에서 외국산 제품을 한국산으로 둔갑시켜 판매하다 적발된 이른바 ‘라벨 갈이’ 상품 규모가 2천억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중국산에 이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산 제품의 라벨 갈이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며 한국내 제조업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단속 강화를 넘어, 붕괴 위기에 처한 국내 제조업의 생산 기반을 되살리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5년간 ‘라벨 갈이’ 1,979억 원… 중국·인도네시아산이 주류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차규근 의원(조국혁신당)이 관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현재)까지 적발된 라벨 갈이 상품 규모는 총 144건, 금액으로는 1,979억 2천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라벨 갈이는 해외에서 수입한 완제품의 원산지 표시를 제거하거나 교체하여 한국산(Made in Korea)인 것처럼 속여 유통하는 불법 행위를 말한다.

국가별 적발 내역을 살펴보면, 중국산 제품이 1,894억 1,200만 원(127건)으로 전체 적발 금액의 95.7%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비중을 보였다.

주목할 점은 중국산에 이어 동남아시아산 제품의 유입과 위조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산 제품은 32억 1,300만 원 규모가 적발되어 2위를 기록했고, 베트남산이 29억 4,800만 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심지어 한국산 제품을 호주로 수출했다가 재수입하는 과정에서 호주산으로 허위 표시한 사례(8억 5,400만 원)도 확인됐다.

관세청은 해당 기간 동안 적발된 업체들에게 총 6억 5,700만 원(62건)의 과징금을 부과했으며, 수입 금액 기준 53억 3,900만 원 규모에 대한 시정명령 조치를 내렸다. 차규근 의원은 “라벨 갈이는 성실하게 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업체들의 의욕을 꺾는 것은 물론, 소비자들의 알 권리와 선택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라며 “관세청을 비롯한 정부 당국의 더욱 철저하고 강력한 단속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 왜 ‘라벨 갈이’를 하는가… 무너진 국내 제조 인프라의 그늘

문제는 이러한 라벨 갈이 현상이 단순한 도덕적 해이가 아닌, 한국내 제조업 환경의 구조적 붕괴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현장 관계자들은 “한국에서는 물건을 만들고 싶어도 만들 사람이 없고, 원부자재를 구할 공장조차 사라지고 있다”고 토로한다.

패션·봉제 산업을 비롯한 한국내 제조업계는 고질적인 인력난과 고비용 구조에 시달리고 있다. 숙련된 봉제 기술자는 고령화되었고, 젊은 층의 제조업 기피 현상으로 인해 신규 인력 유입은 사실상 단절된 상태다. 여기에 원단과 부자재를 공급하던 하청 공장들이 줄도산하거나 해외로 이전하면서, 한국내 생산 기반은 공동화(空洞化) 현상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행 주기가 짧은 시장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는 납기일을 맞춰야 하는데, 국내 생산 능력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결국 유통업자들은 납기와 단가를 맞추기 위해 이미 완제품 형태로 생산된 중국이나 인도네시아산 저가 제품을 들여와 라벨만 바꿔 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단속이 강화되더라도 한국내 생산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 한, 라벨 갈이는 근절되기 어려운 ‘생존형 범죄’의 양상을 띠고 있다는 지적이다.

◇ 탁상행정식 단속 한계… “외국인 취업비자 개방 등 과감한 대안 필요”

이에 따라 대한민국 국회와 관계 당국이 단속 위주의 규제 일변도 정책에서 벗어나, 제조업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적발 건수를 늘리는 탁상행정으로는 라벨 갈이의 근본 원인을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가장 시급한 대안으로 ‘외국인 인력 활용 규제 완화’를 꼽는다. 제조업 현장의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외국인 취업비자(E-9 등) 쿼터를 대폭 확대하고, 숙련 기능 인력에 대한 비자 요건을 완화하여 합법적인 생산 인력을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제조업체 대표는 “라벨 갈이를 막으려면 ‘한국에서 만드는 것이 더 이득’인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외국인 근로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하여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면,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인도네시아산 제품을 국산으로 속일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내 원부자재 공장에 대한 스마트 팩토리 지원, 영세 봉제 업체의 협업화 지원 등 생산 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조업 기반이 살아나야 국내 경제 생태계가 선순환하고, 진정한 의미의 ‘메이드 인 코리아’ 경쟁력이 확보될 수 있다.

차규근 의원의 지적처럼 철저한 단속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단속은 사후 처방일 뿐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내 제조업의 ‘인력 가뭄’과 ‘생산 기반 붕괴’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외국인 인력 정책의 대대적인 개편을 포함한 제조업 활성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2천억 원에 달하는 라벨 갈이의 악순환을 끊고, 벼랑 끝에 몰린 국내 제조업을 구출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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