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도네시아 ‘근로자 보호법’ 통과, 외투기업 경영 패러다임 전면 수정 불가피하다

인도네시아 국회의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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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하원(DPR)이 총 23개 장, 313개 조항으로 구성된 ‘근로자 보호법(RUU Pelindungan Ketenagakerjaan)’을 만장일치로 전격 가결했다. 이번 입법은 지난 2023년 인도네시아 헌법재판소의 위헌 취지 결정에 따라, 기존 일자리 창출법(Omnibus Law)에서 노동 부문을 완전히 떼어내 별도의 단일 독립 법률로 제정한 것이다. 하원 본회의 의결 과정에서 노동계 대표단이 대거 방청하고 프라보워 행정부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점은, 인도네시아 노동 정책의 무게 추가 노동 유연성에서 노동자 권익 및 고용 안정 쪽으로 급격히 회귀했음을 웅변한다.

이번 법 제정은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있는 한국을 비롯한 다수의 외국인 투자기업(외투기업)에 근본적인 경영 체질 개선과 노무 전략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저렴한 인건비와 유연한 인력 운용을 핵심 경쟁력으로 삼아 온 제조·서비스·물류 부문 외투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 엄격해진 규범적 틀 안에서 사업을 전개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이에 현지 법인을 이끄는 외국인 기업 경영자들이 유의하고 직시해야 할 핵심 사안을 짚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외주(아웃소싱) 인력 활용의 문이 사실상 닫혔다. 신법은 외주 허용 범위를 청소, 급식(케이터링), 경비, 광업·석유 지원, 통근 운송 등 5대 비핵심 지원 서비스로 엄격히 제한했다. 그동안 제조업 생산라인이나 물류 현장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던 생산 보조 및 일반 노무 아웃소싱은 명백한 불법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기업들은 즉각 자사의 도급 및 외주 구조를 재점검하고, 필수 공정에 투입된 인력을 정규직 또는 적법한 기간제 근로자로 전환하는 등 공급망 및 인력 포트폴리오를 전면 재편해야 한다.

둘째, 기간제 근로계약(PKWT)의 통제가 한층 가혹해졌다. 계약직 고용 기간을 최초 2년으로 못 박고, 연장은 1년 한도로 최대 2회까지만 허용했다. 이는 과거처럼 단순 반복적인 계약 갱신을 통해 비정규직을 장기 유지하는 관행을 원천 차단한 조치다. 정해진 기한을 초과할 경우 법적으로 정규직 전환 의무가 발생하는 만큼, 현지 경영진은 정밀한 중장기 인력수급계획을 수립하지 않으면 막대한 우발채무와 법적 분쟁에 직면할 위험이 크다.

셋째, 고용종료(PHK) 절차의 강화와 퇴직금 체계 복원으로 인한 출구 전략의 비용 급증이다. 신법은 무분별한 해고를 방지하기 위해 사용자의 사전 자구 노력과 엄격한 법정 해고 요건을 명문화했다. 나아가 비자발적 계약 해지 시 법정 퇴직금, 근속 공로금, 권리 보상금을 엄격히 보장하도록 규정함으로써 기업의 인력 구조조정 비용 부담을 대폭 키웠다. 채용 단계에서부터 고숙련·고효율 중심의 인재 검증이 이뤄지지 않으면, 부적격 인력에 대한 퇴출 비용이 고스란히 기업의 재무적 리스크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넷째, 법정 근로시간 규제 준수와 모성 보호 휴가 확대에 따른 실질 가동률 관리다. 주 5일제(1일 8시간, 주 40시간)와 주 6일제(1일 7시간, 주 40시간)에 대한 법적 상한이 명확해진 가운데, 여성 근로자에 대한 월 2일의 생리휴가와 기본 3개월에 건강상 사유 시 최장 6개월까지 연장 가능한 유급 출산휴가가 법제화됐다. 특히 섬유·의류·신발·전자조립 등 여초 사업장이 다수를 차지하는 한국계 제조업의 경우, 생산성 저하와 대체 인력 확보 비용을 상쇄할 정교한 노무 관리 시스템과 자동화 투자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다섯째, 디지털 플랫폼 및 비공식 부문 종사자에 대한 보호 규정의 신설이다. 플랫폼 알고리즘을 통한 일방적 계약 해지나 계정 차단이 금지되고, 산업안전 및 공정 보수 보장 의무가 부과되었다. 물류·배송, O2O 서비스 등 디지털 기반의 신산업 분야에 진출한 외투기업은 기존의 ‘독립 계약자’ 중심 노무 모델을 전면 수정해 법적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헤지해야 한다.

그간 인도네시아 정부는 옴니버스법을 통해 외국인 투자 유치를 도모해 왔으나, 헌재 판결과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수렴하며 노동 정책의 새로운 균형점을 설정했다. 이제 ‘값싸고 유연한 노동력’에 의존하던 인도네시아 진출의 낭만적 시대는 저물었다. 법 위반에 따른 당국의 처벌은 물론, 현지 노조의 집단행동 리스크 또한 과거 어느 때보다 거세질 것이 자명하다.

현지 외국인 경영진은 법 시행에 앞서 사내 취업규칙과 단체협약(PKB), 개별 근로계약서를 313개 조항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컴플라이언스(법규 준수)를 비용이 아닌 기업 생존을 위한 필수 전제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생산성 중심의 인사평가와 노사 상생의 신뢰 경영을 구축해야만 격변의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흔들림 없는 성장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