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식민지 시대 신호탄을 쏘아 올린 문학의 힘!

「막스 하벨라르」를 읽고 

유진숙 (前 한-아세안센터 아세안홀 관장)

‘커피 중개상 드로흐스또벌은 일어난 적도 없고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을 꾸며내는 소설이나 희곡 같은 가상 이야기를 경멸하면서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약속한다’
-「막스 하벨라르」제1장 p. 25

2_Max Havelaar_1860식민시대 원주민 착취에 대한 진실을 告하다
「막스 하벨라르」의 첫 문장은 네덜란드인 커피 중개상 드로흐스또벌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장사를 위한 계약서만 써 보았고, 소설이란 것은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으며, 읽는 것조차 좋아하지 않고, 진실과 상식만을 신봉한다는 그가 이 소설이 결코 꾸며낸 가상 이야기가 아니라 진실이라는 것에 대해 독자들에게 미리 일러두기를 단단히 하는 것이다. 그만큼 소설 「막스 하벨라르」는 네덜란드인이나 쟈바인 양쪽 모두에게 감추고 싶은 수치스러운 진실을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이 진실을 외치느라 극적인 혐오감을 쥐어짜는 거친 이야기로 독자를 혹사 시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진실은 겅중겅중 뛰어넘어 가도록 놓아두고, 해학 가득한 유모로 살살 달래며 읽는 이에게 대화하듯 말을 걸어온다. 독자는 인간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슬픔으로 눈물을 흘리다가 이내 허풍스런 풍자에 웃기도 하다가 점점 몰아치는 감동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소설의 절정에 이르러, 독자는 마침내 절규하는 양심과 맞닥뜨리고 비극적 진실을 고하는 주인공과 한마음이 되는 것이다.

「막스 하벨라르」는 1602년부터 약 340여 년간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통치했던 식민지배 역사에서, 열대작물 강제재배 정책으로 원주민 착취와 수탈이 극심했던 180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한다. 이 책은 인도네시아가 겪었던 네덜란드 식민지배에 대한 기록이며, 인류 역사의 보편적 주제인 억압과 탄압, 즉 인권에 대한 고발문학이자 정치소설이다.

5_쿤스트끄링 빨레이스 물타뚤리실 에서 양승윤 교수축복받은 땅에서 벌어진 수탈의 비극을 고발한 실화소설
책 제목이자 주인공 막스 하벨라르는 네덜란드 식민 지배층 행정가로서 르박주 부주지사로 부임한다. 그런데 낙후된 르박주를 정의롭고 풍요로운 마을로 발전시키려는 큰 꿈을 품은 젊은 관리가 목도한 것은 쟈바의 토착민들이 광활하고 비옥한 축복의 땅에서 식량이 없어 굶어 죽어가고 있는 현장이었다. 커피·설탕·담배와 각종 향신료 등 환금작물 생산을 위한 대단위 커피농장이나 사탕수수밭을 경작하느라 정작 식량 생산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식민지 확대와 원주민 착취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바타비아 총독부(네덜란드 정부), 그리고 오히려 수탈의 앞잡이 노릇으로 자국민을 굶주림과 죽음으로 몰아넣는 동인도(지금의 인도네시아) 토착 기득권 세력의 횡포에 대항하여 막스 하벨라르는 원주민의 편에 서서 목숨을 걸고 불의를 폭로하는 투사가 된다. 자신의 조국, 문명국 네덜란드가 식민지배지에서 저지른 야만적 만행에 맞서 고독한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막스 하벨라르」에는 식민지 수탈의 현장을 낱낱이 폭로하는 한없이 거칠고 척박한 이야기들 사이사이에 아름다운 시와 노래, 문학과 예술적 요소가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사이쟈와 아딘다’의 이루지 못한 비극적 사랑 이야기는 소설 속에 또 하나의 단편 문학작품으로 학대받는 원주민의 깊은 슬픔을 독백형식으로 담담하게 전한다. 빠랑꾸쟝에 살던 사이쟈와 정혼자 아딘다는 영주의 횡포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

고향을 쫓기듯 떠났던 사이쟈는 믈라띠꽃 향기 가득한 마을로 몇 년 만에 다시 돌아오지만, 람뿡에서 온갖 고초를 당해 죽은 아딘다에 이어 사이쟈까지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그들의 죽음 얼마 후, 바타비아에서는 ‘반역의 땅 람뿡’이 네덜란드 깃발 아래 무릎을 꿇었다는 낭보에 축제가 벌어지고, 이에 국왕 폐하는 원주민 봉기를 진압한 이들에게 작위와 훈장을 하사하고, 수많은 교회에서는 감사 기도가 울려 퍼진다. 막스 하벨라르는 네덜란드 시인 헨드릭 톨렌스 시구로 외친다. “하느님! 이 통절함을 동정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제발 그날의 제물만큼은 받아들이지 마옵소서!”

막스 하벨라르는 알맹이 없는 껍데기는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이며,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몰려와도 양철북 같은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는 올곧은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막스 하벨라르는 자신의 조국, 문명국 네덜란드가 식민지배지에서 저지른 야만적 만행에 맞서 고독한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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