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 이야기 (34) Think Twice – 신사(愼思), 그 뺄셈의 미학

허 달 (許 達) 1943 년생 서울 출생, 서울고, 서울공대 화공과, 서울대 경영대학원 졸업 SK 부사장, SK 아카데미 초대 교수, 한국케미칼㈜ 사장 역임 한국코칭협회 인증코치 KPC, 국제코치연맹 인증코치 PCC 기업경영 전문코치, 한국암센터 출강 건강 마스터 코치 저서: 마중물의 힘(2010), 잠자는 사자를 깨워라(2011), 천년 가는 기업 만들기(2012)

요즘도 계속되고 있는지 모르지만, ‘복면가왕’이라는 TV 프로가 있어서 한동안 재미 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과거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노래들을 복면 가수들이 나와 모창(模唱)도 하고 자기만의 창법(唱法)으로도 불러 전혀 새로운 노래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최초로 그 곡을 불러 히트했던 원조 가수들이 방청석에 앉아, 고개도 끄덕이고, 감탄도 하면서 축하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는 열기구(Balloon) 복면을 쓴 가수가 훌륭하게 모창했는데, 노래 자체도 애잔했지만, 원조 가수의 축하가 없어 더 쓸쓸하였다. 원조 가수이자 작곡, 작사가인 당대 음유시인(吟遊詩人?) 김광석이 이 노래를 무슨 암시처럼 스스로 불러 남기고, 서른 세 살의 나이로 다른 유명(幽冥)을 선택하였기 때문이었다.

(전략)
조금씩/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멀어져간다
매일 이별하며/살고 있구나
계절은/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 것도/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아닌데
(후략)

아내를 서울 두고 단신으로 인도네시아 와 있던 작년 어느 때였든가, 색소폰 연습에 게으름을 부리지 않도록 스스로 신칙(申飭)하는 의미에서, 하루 한 곡 씩 색소폰을 불어 녹음 파일을 아내에게 보내주기 시작하였었는데, 아내는 또 그 파일을 지인(知人)들과 카톡으로 공유하였던 모양이었다.
하루는 ‘서른 즈음에’를 듣고 싶다고 신청한 고객(?)이 있다기에 곡을 불어 녹음하고, 파일에는 ‘여든 즈음에’라는 제목을 붙여 보냈다. 원조 음유시인에게는 뜻하지 않은 표절이 되어 미안하지만, 그렇게 바꿔 붙여 놓고 보니, 비로소 구색이 맞는 듯 하여 내자와 함께 카톡을 통해 쓴 웃음을 나눴던 기억이 있다.

마광문 서법사 서 '신사(愼思)
마광문 서법사 서 ‘신사(愼思)

언젠가 쓴 칼럼 글에서 주제 넘게 도덕경(道德經)에서 어깨 넘어 주워들은 ‘손지우손(損之又損)’을 운위한 것도 비슷한 ‘여든 즈음의’ 뺄셈 맥락이라 하겠다. 이를 읽고 친구 하나가 이메일을 보내왔다. ‘손지우손’ 운위했으니, 뺄셈 잘 해 덜어가며 늘그막의 인생 차분히 살다 가라는 이를 테면 핀잔 겸 덕담이었다.

가수 김광석처럼 인생을 축소판으로 미리 산 것은 아니지만, 그러고 보니 뺄셈에 대한 생각은 어제 오늘의 새로운 생각은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전 1989년 뱀의 해, 이제는 고교생 학부모가 된 뱀띠 막내 딸이 열 두 살 되는 해였다고 기억된다. 당시 근무하던 회사 유공(油公)의 사보(社報) 편집자로부터 글 한 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 ‘뺄셈의 미학(美學)’이라는 제목으로 친구 시인의 시를 인용해 가며, 짧은 잡문(雜文) 한편을 썼던 것이 생각나서 꺼내어 읽어보고 아래에 소개한다.

(이하 ‘뺄셈의 미학’ 자기표절)
덧셈은 끝났다/밥과 잠을 줄이고/뺄셈을 시작해야 한다/
남은 것이라곤/때묻은 문패와 해어진 옷가지/이것이 나의 모든 재산일까/
(중략)
이제는 정물처럼 창가에 앉아/바깥의 저녁을 바라보면서/
뺄셈을 한다/혹시 모자라지 않을까/그래도 무엇인가 남을까

(김광규의 시 [뺄셈]에서)

송년회를 겸한 시인의 출판기념회에서 돌아오면서 한 해를 보내며 그래도 한 줄 시를 얻은 친구에 대한 부러움이 희미한 질투인 것 같아 부끄러웠다.
‘열심으로 한 해를 살았노라고’는 하지만 부쩍 키가 크고 목소리가 다소 어른스러워진 삼 남매의 대견함 외에 과연 얻은 것은 무엇인가. 세모가 어느새 깊어가고 내 뺄셈의 미학은 어렵기만 하다.

아주 오래된 일로, 부장 초년생 때, 내가 주제 넘게도 사내 여사원 모임의 초청연사가 되어 진땀 흘리던 때의 일이 기억난다. 무슨 말 끝엔가 여사원 하나가 우리 집 가훈(家訓)이 무언가를 물었던지, 가훈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아직은 아니지만, 내가 나이 들어 가훈 같은 것을 하나 만들어 여봐란 듯이 거실 벽에 걸어야 한다면, ’60년대 유행가 가사 제목을 하나 골라 써 붙이리라.’
‘Think Twice.’
부룩 벤튼의 그 감미로운 저음의 허스키를 60년대 AFKN 즐겨 듣던 팝뮤직 애호가들은 기억하겠지. 실은 연가(戀歌)였으나 가사의 내용은 아무래도 좋아.

적어도 한번은 상대방의 신발을 신고 서서 더 생각해 보자.
조금 억울한 듯 하더라도 Think Twice.
집에서부터 이것을 시작하기로 한다면, 오! 개구쟁이를 징벌하기 전에 엄마여! Think Twice.

세월이 흘러서 내 나이도 이른 바 중년, 이제는 가훈 한 줄을 멋지게 써 걸어야 할 때가 되었건만, 이 말씀은 아직도 공염불에 지나지 못하고 있다. 우선 내가 준행(遵行)할 자신이 있어야지. 수범(垂範)의 어려움이 갈수록 무겁게 느껴지는 것만도 뺄셈에서 얻어지는 한 가닥 지혜라면 지나친 자위일까.

그러므로 새해에는 기필코 가훈 한 줄을 부끄럼 없이 써 붙여 보리라.

뱀의 해에 큰 구렁이 꿈을 꾸고 막내딸을 얻었었다. 덧셈 중이었으므로 주책이었고 욕심스러웠었지. 저녁에 키를 대보니 막내 머리가 어깨 위로 솟는다.
간난 이가 열 두 살이 되어 다시 맞는 뱀의 해에, 가훈 한 줄을 기어코 얻어보리라는 소망이 이제 소박하고 미소로운가, 아니면 가당찮은 너무 큰 욕심인가.
(자기표절 全文 끝)

위의 글을 쓴 뒤에도, 뺄셈을 계속하며 많은 세월이 더 지났지만 종래 ‘Think Twice’를 써서 가훈이랍시고 써 붙이지는 못하였다. 이 없으면 잇몸이라고, 그 대신 다른 방편이 하나 생겼다.

한문 공부 좀 하고 서예를 배운답시고 90년대 초부터 어깨너머로 몇 년 붓 잡는 법을 배웠는데, 당시 알게 된 중국 서법사(書法師) 마광문(馬廣文)씨가 ‘신사(愼思)’라고 쓴 예서(隸書) 소품(小品)을 한 점 선물로 주었다. 내 나름의 감상으로는 생각 ‘사(思)’ 자는 뛰어 도망가려는 마음의 모습을 표현한 듯 하고, 삼갈 ‘신(愼)’자는 창과 방패를 든 마음의 주인이 엉거주춤 이를 외면하고 선 듯한 모양으로 쓴 것처럼 보이는 데, 단지 내 보기에 그렇다는 것일 뿐 작자의 의도는 물어보지 않았었다.

‘신사(愼思)’와 ‘Think Twice’. 뜻의 어울림이 그럴 듯 하기에 벽에 걸어 놓고 바라본지 오래된다. 아이들은 ‘신사(愼思)’든 ‘Think Twice’든 아랑곳 없이 제 맘대로 커서 짝 지어 핵가족 만들어 떠나갔고, 30년 역사도 넘는 가훈 써 붙이기 프로젝트의 창연(蒼然)한 이 흔적은 여러 차례의 전투와 같은 이사(移徙)를 무사히 살아남아, 아직도 서울 집 아파트 거실 반닫이 위에 걸려 있어서, 오늘 코칭을 전업 삼게 된 ‘여든 즈음’ 노년 주인공의 회상(回想) 주제가 되었다.

코칭 과정 중에는 자주 가훈 이야기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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