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 이야기-6) 트롯 ‘보랏빛 엽서’

허 달 (許 達) 1943 년생 서울 출생, 서울고, 서울공대 화공과, 서울대 경영대학원 졸업 SK 부사장, SK 아카데미 초대 교수, 한국케미칼㈜ 사장 역임 한국코칭협회 인증코치 KPC, 국제코치연맹 인증코치 PCC 기업경영 전문코치, 한국암센터 출강 건강 마스터 코치 저서: 마중물의 힘(2010), 잠자는 사자를 깨워라(2011), 천년 가는 기업 만들기(2012)

“여보, ‘보랏빛 엽서’ 노래 좋던데, 한번 불어봐요. 이거 부른 가수 인기가 요즘 유튜브에 난리두 아니래요..”

아내가 권하기에 테너 색소폰으로 시도해 보았다. 두어 번 반복해도 ‘미스터 트롯’에서 임영웅이 가창(歌唱)으로 부른 그 맛이 엇비슷한 정도도 살아나지 않으니, 말은 안 해도 아내는 그만 실망한 눈치다.

일찍부터 색소폰에 재미 들린 가까운 후배의 강권에 못 이겨 취중(醉中)에 어쩌다 약속한 것이 그만 농가성진(弄假成眞)이 되었다.

주책 바가지 할아범, School of Saxophone 입문하고, 앨토 색소폰 하나 사서 불기 시작한 것이 어제 같은데, 올해가 십년 째. 소리 모양이 좀 잡히길래 남들 하는 대로 테너 색소폰도 하나 더 장만하고 노동(老童) 학예회(?)도 몇 번 출연했었다. Jazz 연주는 참아 주기 어렵지만, 그런대로 뽕짝은 들어줄 만 하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실은 평이한 곡이 더 연주하기 까다로운 법, ‘보랏빛 엽서’, 이 오죽잖은 시험에 걸려들었다.

‘요것 봐라’ 싶어 악보를 조금 살펴보니, ‘그러면 그렇지’, 쉼표 위치가 까다롭다. 감동을 연주에 제대로 싣기 위해서는 톤(Tone)의 강약 조절도 중요하지만, 텅잉[tonguing-혀끝을 사용한 연주] 넣기 빼기를 잘 활용하고, 밀고 땅기는 맛을 내되, 드럼보다 앞서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치 여백(餘白)이 때로 산수화의 더 중요한 부분이 듯, 이 노래의 악보는 쉼표가 핵심이었던 것을 유심히 보고서야 비로소 발견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프로그램 되어 있다.

내가 악보에서 늘 음표만 읽어내는 것에 습관화 되어 쉼표의 중요성을 자칫 간과했던 것처럼, 우리는 대체로 프로그램 된 대로 외부에서 오는 신호와 자극에 대응하며 살고있다. 다윈 학자는 이것이 인류인 우리를 살아남게 한 유전적 입력의 축적이라고 미화(美化)하여 말할지 모른다.

이 프로그램의 작동을 가끔은 멈추어 보자는 것이 코칭에서 다루는 ‘주도성[Proactivity]’ 과제이며, 지난 회 ‘대구의 품격’에서 감동 받았던 ‘자기리더십’의 첫 시동(始動)이 된다. 프로그램의 자동실행이 멈춰져야, 우리는 스스로가 주인공인 프로그래머이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새롭고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 지금까지 자동실행 되던 프로그램 이외에도 여럿 있음에 생각이 미치게 되고, 이 중 의미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Stop, Think, Choose, STC 로 줄여서 사용한다.

주도성을 되찾는 ‘우선 멈춤’, 그리고 ‘대안의 발견’, ‘선택’이라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삶에 대입하면, ‘잠깐 스톱. 내 삶은 내가 선택한다니까.’ 가 된다. 나 아닌 다른 존재 또는 환경에 의하여 내 삶의 선택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기에 ‘주도성(Proactivity)’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2007년 8월 26일,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의 컴퓨터 사이언스 교수, 당년 47세의 랜디 포시는 세 장의 MRI 사진과 함께 믿을 수 없는 최후 통첩을 받았다. 일년 전 췌장암을 수술하고 치료 받고 있었으나, 암은 호전되지 않고 이미 여러 장기(臟器)에 전이되어 있어, 그에게 남은 기간은 짧게는 한 달, 길어도 몇 개월을 넘지 못한다는 선고였다. 그는 어린 세 아이의 아버지이고,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이며, 컴퓨터와 관련된 많은 성공적인 연구를 추진하던 중이어서, 이런 선고를 불평 없이 받아들일 형편이 아니었다.

구동이 멈추어 진 일상(日常)의 프로그램 앞에서, 어려운 일이었지만, 랜디는 운명을 향하여 불평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까지도 소홀히 하지는 않겠다는 주도성(Proactivity)이 그 힘의 원천이었다.

그 누구도 자기를 동정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선택, 남은 기간을 불평과 절망으로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고 의미 있는 일로 채우겠다는 주도적 선택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가 카네기 멜론 대학의 400명 청중 앞에서 한 “마지막 강의(The Last Lecture)”의 동영상이 유튜브를 타고 전세계에 유포되어 이미 수백만 어쩌면 앞으로 올 세대를 포함하여 수천만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게 될, 그의 위대한 유산[Legacy]으로 결실 되었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초청 받은 그는, 이 강의는 대학 강당에 모였던 청중에게 한 것이 아니라, 실은 미래에 성장한 자신의세 아이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고 고백하여 시청자의 눈시울을 다시 한번 뜨겁게 했다.

암에 의한 돌연한 멈춤과 자신에 대한 주도적 성찰이 아니었더라면, 랜디 포시 교수는 어쩌면 선택할 기회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에 그가 살고 간 것보다 두 배 길이 좀 못 미치는 평범한 생애를 살고 나서, 특별한 유산을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는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미스터 트롯, 임영웅 열창 모습
미스터 트롯, 임영웅 열창 모습

보랏빛 엽서에/실려온 향기는

당신의 눈물인가/이별의 마음인가

반주기 틀어 놓고, Stop 음표(音標) 그러니까 쉼표에 주의하여 다시 연주해 보았더니, 아내가 하마 색소폰 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 잠시 역연(歷然)하다.

연가(戀歌)의 감칠맛은 그 애절함에 있는 줄 왜 모르랴만, ‘떠나버린 당신 마음 붙잡을 수 없어, 눈물로 얼룩진 일기장에 기다리는 사연을 적는 일’ 그만 쉬[休止]고, 이제 Stop/Think/Choose 를 통해 무엇을 찾을 것인가 묻는다면, 그건 이 비련의 주인공에게 너무 멋대가리 없는, 비정한 코치의 모습이 될까?

코치는 고객과 자신의 일상 속에서 이 쉼표와 멈춤이 갖는 의미에 주목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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