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수출 한국’, 10대 교역국 중 9곳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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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베트남에 이어 일본 호주가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하기로 했다. 한국의 10대 수출국 중 미국을 뺀 9개국으로 가는 기업인의 출장길이 사실상 막혔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지적이다.

외교부는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국가가 102개로 집계됐다고 6일 발표했다. 유엔 회원국 193개 중 53%에 해당한다. 한국 10대 교역국(수출입 합계) 중에선 미국과 독일을 뺀 8개국이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했다. 10대 수출국 기준으로는 미국을 제외한 9개국이 한국에 대해 빗장을 걸었다.

홍콩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일부 지역)는 한국인의 입국을 아예 금지했다. 중국과 대만은 자국에 입국하는 한국인을 2주간 격리하고 있고, 일본은 오는 9일부터 한국인의 입국을 사실상 금지한다. 인도는 긴급한 목적 외에 한국인의 신규 비자 발급을 중단했다. 멕시코는 검역 강화를 통해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하고 있다.

한국의 3위 교역국인 일본이 한국인의 입국을 막기로 하자 대일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정보기술(IT)업체에는 비상이 걸렸다. 구매처와의 만남 기회인 일본 출장과 각종 전시회 참가가 취소되는 것은 물론 항공편 감소로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들은 9일부터 일본 노선 운항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산업계에서는 일본의 조치가 미국을 자극해 한국인에 대한 입국 제한 명분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한국 10대 기업(매출 기준)의 매출에서 해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65.9%(이하 2018년 기준)에 달한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42.8%)보다 훨씬 높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해외 매출 비중은 각각 86.1%, 97.9%에 이른다. 코로나19 여파로 수출 기업들이 타격을 받자 지난달 한국의 하루 평균 수출액은 18억3000만 달러로 지난해 2월보다 11.7% 감소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요 교역국이 한국인의 입국을 막으면 물적 교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이대로 가다간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日 의존 ‘소재·부품·장비’ 또 치명타, 남은 하늘길마저 끊겨 LCC 파산 위기
“사상 처음으로 국제선 운항을 전면 중단할 예정입니다. 이런 일이 생길지 상상조차 못했습니다.”(저비용항공사 관계자) “일본 바이어 초청으로 지난달 중순에도 요코하마의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왕래가 막히면 일본 업체와의 모든 수출 협의를 멈춰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중소기업 대표)
일본이 오는 9일부터 한국인에 대해 사실상 입국금지 조치를 내리기로 하면서 국내 산업계 전반에 큰 충격이 예상된다. 일본 노선 중단으로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위기에 몰린 저비용항공사(LCC)들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았다. 일본 외에 대체 수입처를 찾기 힘든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들을 비롯한 정보기술(IT)업계도 큰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거래처와의 대면 접촉 등 인적 교류를 중시하는 일본 기업의 특성상 국내 중소기업들은 일본과의 거래가 전면 중단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시장개척·수출·수입 막히는‘3중고’
한국무역협회는 24일 일본 도쿄에서 열 예정이었던 ‘한국상품 전시상담회’를 취소한다고 6일 발표했다. 100여 개 한국 기업이 참가해 일본 업체와 수출 상담을 벌이는 대규모 행사다. 일본이 지난 5일 한국인에 대해 입국 금지 조치를 하겠다고 전격 발표하면서 행사가 물거품이 됐다.

일본 출장길이 막히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 SK하이닉스 등 현지에 진출한 6200여 개 기업도 비상이 걸렸다. 새 스마트폰 ‘갤럭시S20’을 앞세워 7% 수준인 일본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던 삼성전자는 아직 일본 출시 일정도 잡지 못했다. 올림픽 공식 후원사인 삼성전자는 오는 7월 도쿄올림픽 마케팅에도 차질을 빚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10초고화질 8K OLED TV로 일본 시장 문을 두드렸던 LG전자도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LCD(액정표시장치) TV 원조인 일본 샤프가 올해 OLED TV를 출시하면서 OLED 시장이 커질 것으로 기대한 LG디스플레이 등 패널업계도 충격파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일본과 거래가 많은 소재·부품 업체들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정밀화학 원료를 생산하는 A사 대표는 “긴급한 주문은 출장을 통해서 해야 하는데 일본 출장길이 막혀 일본 업체와의 공동 연구개발(R&D)을 중단해야 할 처지”라고 털어놨다.

양국 민간 경제 교류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과 사사키 미키오 미쓰비시상사 특별고문이 양국 회장을 맡고 있는 한일경제인협회는 5월 18~20일 도쿄 오쿠라호텔에서 ‘제52회 한일경제인회의’를 열 예정이지만, 한국인 입국 금지가 장기화하면 행사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상 초유의 위기 맞은 LCC
일본 노선까지 끊긴 LCC들은 김포~제주 등 국내선만 띄워야 할 처지다. 아시아나항공도 일본 취항 30년 만에 11개 노선 운항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LCC인 에어부산, 이스타항공은 일본의 입국금지가 시작되는 9일부터 국제선 운항을 사상 처음으로 전면 중단하는 사태를 맞게 된다. 에어서울은 지난 1일부터 전체 11개 국제선을 비운항하고 있다. LCC들의 줄도산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에어부산은 부산~오사카·나리타·나고야·후쿠오카 등 일본 노선 4개를 9일부터 중단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운항하는 곳이 부산~제주 등 국내선 3개 노선만 남는다. 에어부산 관계자는 “하루 최소 20억 원의 매출을 올려야 비행기 리스료(임대료)와 인건비 등을 감당할 수 있는데 지금은 1억5000만원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나리타·오사카 운항을 멈추는 이스타항공도 국내선만 운항할 계획이다. 제주항공은 인천~나리타·오사카 두 곳만 남겼다. 에어서울은 지난 1일부터 11개 전체 국제선 노선 운휴에 들어갔다. 대한항공도 9일부터 일본 노선 17개 중 16개가 운항을 멈춘다. 인천~나리타 노선만 하루 한 차례 운항한다. 주 202회에 달했던 대한항공의 일본 노선이 주 7회 운항으로 97% 쪼그라드는 것이다.

자동차 등 공산품 수출 시장이자 철광석 등 원자재 수입처인 호주의 한국인 입국 금지도 국내 산업계에 도미노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기아자동차는 쏘렌토 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내세워 호주 수입차 시장에서 판매를 늘려왔다. 포스코는 1조5000억 원을 투자해 호주 로이힐 광산 지분 12.5%를 확보해 철광석을 수입하고 있다.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