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동남아 투자 활기…현지화는 숙제

한국 정부가 2017년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사업과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이후 한국 기업들의 동남아 진출 러시가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벤처투자계의 움직임이 주목할 만하다는 분석이다. 지난 2년 동안 동남아에 대한 한국의 투자는 다양했다.

미래에셋-네이버 아시아성장펀드가 인도네시아 전자상거래 유니콘기업 ‘부칼라팍’에 5000만 달러를 투자했고,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와 카카오벤처 등이 인도네시아 부동산중개 스타트업 ‘마미꼬스’에 대해 비공개 시드 펀딩을 했다.

한국의 벤처투자는 상거래와 부동산 이외에도 다양한 부문에서 이뤄지고 있다. 싱가포르의 벤처투자 전문 매체 ‘딜스트리트아시아’의 9일 보도에 따르면, 핀테크 부문에서 한국투자파트너스(KIP)가 싱가포르 C88에 투자했고, 자동차 부문에서 소프트뱅크 벤처스 코리아가 싱가포르 카로를 지원하고 있다. 여행 부문에서 본엔젤스와 넥스트랜스가 베트남의 브이레저에, 물류 부문에서는 넥스트랜스와 퓨처플레이가 베트남 에코트럭에 투자했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의 벤처캐피털들은 동남아 기업과 합작하는 방식으로 이 지역의 스타트업에 대거 투자하고 있다. KIP는 싱가포르 골든이퀘이터와 함께 8700만 달러 펀드를 만들어 ‘레베’와 ‘오마이홈’을 포함한 스타트업에 투자 중이다.

인터베스트와 인도네시아 케조라 벤처스가 1억 달러 이상의 펀드를, 한화자산운용과 싱가포르 골든게이트벤처스가 2억 달러 성장펀드를, KB투자펀드가 인도네시아 MDI벤처스와 1억 달러 상당의 펀드를 조성했다. 미래에셋-네이버아시아성장펀드는 베트남 비나캐피털벤처스의 투자자다. 이들의 동남아 직접투자 목록엔 레드도어즈와 데스케라, 부칼라팍, 해피프레쉬 등이 있다.

한국 정부의 정책이 동남아시아에 더 많은 투자를 촉진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거기에 국한된 건 아니라는 분석이다.

이미 동남아시아에 대한 전 세계의 투자 흐름이 대폭 커지고 있었다. 싱가포르 벤처캐피털·사모펀드연합(SVCA)에 따르면 2017년 동남아시아에 대한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 투자액은 약 235억 달러로, 사상 처음 유럽에 대한 투자액을 넘어섰다. 전년 대비 3배 가까이 늘었다. 이 가운데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80억 달러로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늘었다.

이런 흐름은 2018년 초 여러 개의 대형투자거래로 이어졌다. 알리바바가 동남아 전자상거래 거물기업 ‘라자다’에 추가로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인도네시아 공유차량 거대 기업인 ‘고젝’은 15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한국 투자자들은 특히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센토벤처스와 ESP캐피털이 작성한 베트남기술투자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베트남에 대한 벤처펀드 61개 가운데 13개가 한국 소속이었다. 이는 싱가포르 소속 11개 펀드의 벤처투자를 앞선 최대 규모다. 2015년 베트남에 투자한 한국 펀드는 단 1개였다.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 측은 “한국은 모바일과 인터넷 산업에서 시대를 앞선다. 그런 한국이 성장잠재력이 큰 동남아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는 사실이 이 지역에 대한 긍정적 견해를 형성하는 좋은 참고점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 소재 액세스벤처스의 파트너인 찰스 림은 딜스트리트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스타트업의 성장잠재력은 외국계 벤처캐피털을 끌어들이는 흡입요인일 뿐 아니라 펀드 목표를 이뤄 투자금을 회수할 기회를 크게 개선하는 요소”라고 말했다.

액세스벤처스는 2번째 조성한 펀드에서 동남아시아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동남아 투자펀드를 출시한 이유 중 하나는 동남아시아에서 투자금을 회수할 기회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성장잠재력이 가장 큰 인터넷 시장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동남아로 몰리는 이유다.

수많은 M&A 전문기업들이 동남아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주시하고 있다. 구글 등 실리콘밸리의 거대기업들도 동남아 기업들을 투자와 인수합병 대상으로 진지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동남아 스타트업에게 한국 투자자들의 유입은 단순한 환영 이상의 것이다. 한국 투자자들의 넉넉한 자금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투자자들이 현지 기업에 제시하는 관점의 참신함 때문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슬림 여성을 위한 인도네시아 패션유통 기업 ‘소라벨’이다.

최근 펀딩에서 2700만 달러를 끌어 모은 소라벨은 현재 4곳의 한국 투자자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시드투자 단계에서는 KIP가, 이후 단계에서 인터베스트와 엔코어벤처스, 시프트가 투자했다. 소라벨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제프리 유워노는 “가장 큰 가치 중 하나는 한국 산업계에서 관점과 기준점을 제공 받는다는 것으로, 우리에게 특히 도움이 된다.

전 세계 많은 투자자들이 중국을 기준으로 삼아 우리를 대한다. 하지만 중국과 인도네시아는 근본적인 시각에서 많이 다르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엔 여러 개의 다른 시장이 있기 때문에 일률적인 관점이 아니라 선별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한국 투자가 매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 벤처투자기업에게 동남아시아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의 문제다. 한국 내 시장이 투자와 관련해 공급 과잉 상태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벤처투자기업인 ‘빅뱅엔젤스’의 CEO 마이클 황은 “2018년 벤처에 투자된 금액이 40억 달러를 넘었다.

게다가 한국 정부는 내년에만 140억 달러의 예산을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연구개발(R&D) 지원에 쓰기로 했다. 때문에 많은 벤처캐피털들은 투자할 대상을 못 찾고 있다. 최근 이들은 동남아시아와 인도로 시야를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빅뱅은 100개 이상의 기업을 포트폴리오에 두고 그 중 3개 기업에서 성공적으로 투자금을 회수한 바 있다.

황 대표는 현재 싱가포르 벤처캐피털과 합작펀드를 준비 중이다. 그는 “한국 투자자들이 동남아 시장에서 더 큰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보편적 전략으로 합작펀드를 고려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벤처캐피털에게 해외 벤처캐피털과 합작 펀드를 만드는 건 새로운 경험이다. 하지만 꼭 필요한 조치”라고 말했다.

최근 KB투자도 동남아 벤처캐피털과 합작펀드를 선언했다. KB투자는 인도네시아 국영이동통신 ‘텔콤인도네시아’의 벤처투자 자회사인 ‘MDI벤처스’와 함께 1억 달러 상당의 펀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KB투자 파트너인 에릭 유는 “합작투자는 현지화 전략의 일환”이라며 “대부분 한국 투자자들이 현지화에 나서지 않았는데, 그 결과 동남아 투자실적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벤처투자기업이 동남아에 투자할 때 일반적으로 사례별, 프로젝트 별 접근법을 취한다. 적극적으로 거래를 주선하기보다 예정된 거래를 먼저 들여다본다.

또 한국의 동료 투자자, 세콰이어캐피털과 같은 대형 벤처캐피털로부터 소개나 위탁을 통해 일하려 한다. 물론 이런 전략이 수익성 높은 투자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동남아 시장의 성장동력에 대한 확고한 이해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동남아에 대한 이해는 장기적 성공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KIP 전직 국장이었던 유 파트너는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인도네시아 여행 스타트업 ‘고젝’이 왜 그리 거대한지, 중국의 모바일결제 스타트업 ‘고페이’가 왜 그렇게 빨리 시장을 장악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지화가 필수다. 맥락에 대한 이해가 절실하다. 몸집만 큰 투자자들은 동남아 시장의 독특함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현지화는 투자자들의 이해를 넓힐 뿐 아니라 투자를 받는 기업의 이해도 넓힐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지 창업자들이 한국 투자자들의 존재감, 그들이 제공하는 가치에 더 친숙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 파트너는 “한국 투자기업들은 현지에서 브랜드 가치를 누리지 못한다.

현지의 많은 창업자들은 한국이 단지 돈만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우리는 한국의 독특한 브랜드를 동남아시아에 뿌리내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향후 3년 내 많은 것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일부 벤처투자기업은 동남아에 사무실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더 많은 시간을 공들여야 한다. 사무실을 연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현지 파트너와 현지 관리인을 고용해 현지화된 방식으로 사업해야 한다. 최소 5년 이상을 공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는 싱가포르에 현지 사무실을 낼 계획이다. 이 기업 홍보팀은 “싱가포르에 사무실을 낸다는 것은 우리의 투자 범위를 동남아 시장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새로운 사무실은 오는 11월 문을 연다. 동남아시아의 차세대 유니콘 기업을 찾고 지원하고 성장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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