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 고통 안긴 한국 석탄발전소” 경향신문 기고

-기 고-

반짝이는 소금이 흰 꽃처럼 드넓게 펼쳐져 있고, 펄떡이는 물고기가 가득하던 곳. 인도네시아 자바섬 서쪽의 작은 어촌 찌레본은 내가 나고 자란 삶의 터전이다. 내 어머니와 할머니, 그의 할머니가 나고 자란 이 마을은 풍요롭고 아름다운 환경이 최고의 자랑거리였다.

몇 년 전부터 내 자랑거리에 금이 가더니 이내 무너져 내렸다. 새카만 석탄재가 내려앉아 검은 소금밭이 되면서부터다. 한때 자와바랏 최대의 소금 창고로 명성을 날렸지만, 염전 사업은 설 자리를 잃었다. 새우와 조개도 보기 어려워졌다.

2017년 현대건설이 이곳에 찌레본 석탄발전소 2호기를 짓기 시작하면서, 온수 폐기물 처리와 선박 이동, 거대한 공사장 먼지와 석탄재가 해양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조개껍데기에는 폐기물이 달라붙어 있고, 물고기가 전처럼 잡히지 않아 어획도 양식도 모두 쓸모 없게 되면서, 마을 주민들의 생계가 위험에 빠졌다.

세대에 걸쳐 어업에 종사하던 주민들은 일거리를 잃으면서, 매일 일감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 전전하게 됐고, 이마저도 녹록지 않은 이들은 기약도 없는 보상을 기다리며 온종일 집에 틀어박혀 있다.
살아야겠다, 삶을 돌려내라는 외침으로 거리에 나왔지만, 되레 경찰의 위협을 받으며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소송으로도 맞섰다. 2016년 겨울, 주민들이 찌레본 2호기에 내린 환경 허가를 취소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6번의 공판, 소송을 낸 주민들은 협박을 당하고 싸움에 휘말리기를 반복했고 매수의 유혹도 받았다.

건설 반대로 잡음이 계속되면서 일부 주민들은 건설 찬성 입장으로 기울기도 했고, 찬성과 반대 사이의 좁힐 수 없는 입장 차로 반목과 갈등은 깊어졌다. 끝까지 소송을 포기하지 않은 주민들은 이웃의 눈총과 감시를 견디지 못해 쫓기듯 이주했고, 고향을 떠나 찾은 새로운 마을에서도 꼬리표가 붙은 채 정착하지 못하고 고통으로 얼룩진 일상을 살았다.

원고 승소 판결. 그토록 기다리던 결과를 얻고 나니 다시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반둥행정법원은 찌레본 2호기에 내려졌던 ‘환경 허가’를 취소하는 판결을 내리며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부지 위치가 ‘찌레본 공간계획’ 내의 규정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석 달 뒤, 찌레본 2호기에 취소됐던 환경 허가가 다시 내려졌다. 취소 판결의 근거가 된 공간계획 규정이 판결 며칠 전에 수정되었다는 것이었다. 주·시·구의 공간계획이 상충될 때 분쟁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의 법이다. 무력감에 주저앉고 싶었다.

재심을 신청했지만, 결과는 기각. 상급 법원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다시 판결에 이의를 제기했고, 끝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이 싸움이 지난하게 진행 중이다.

그러던 중, 찌레본 2호기 건설사인 현대건설이 찌레본 지역 군수인 ‘순자야’에게 돈을 건넨 혐의가 드러났다. 매관매직과 여러 건의 뇌물 비리로 고발당한 순자야의 재판에서였다.

순자야는 현대건설로부터 총 65억 루피아(약 5억4000만 원)를 지방 면장을 통해서 건네 받았다고 시인했다.

뇌물 혐의가 세상에 알려졌지만 마을의 상처는 아직 진행형이다. 여전히 찌레본 2호기는 건설 중이고, 관련된 이들은 처벌받지 않은 채, 지역의 갈등과 분쟁은 해결을 모르고 반복되고 있다.

막대한 자금이 어떤 이해관계를 타고 어디로 흘러 들었는지 추적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주목해야 한다. 해외 석탄발전소들은 정부의 공적금융으로 투자되기 때문이다.

아직 채 지어지지도 않은 발전소로 인해 생긴 문제가 이토록 수두룩한데도 여전히 높이 올라가는 발전소를 보면서, 이 사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게 된다.

한국은 인도네시아의 석탄발전 사업 참여를 재고하라. 이 사회와 나라를 병들게 하는 부패 관행을 정당화시키는 데 동참하면 안된다. 나와 우리 마을, 나아가 인도네시아 국민에게 석탄발전소가 부과하는 고통은 비단 오염된 공기와 날아드는 석탄재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을 어귀에 반짝이던 새하얀 소금 밭만큼이나 아득해진 정의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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