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 전기차, 요즘 왜 이렇게 ‘핫’할까

지난달 31일 자카르타 도심에서 전기 차량을 소개하기 위한 전시회가 열렸다. 전기차 관련 부처인 해양조정부, 산업부, 교통부의 장관들이 인도네시아에서 제작한 전기 오토바이 그싯(Gesits)을 직접 타고 퍼레이드를 이끌었다. 행사 전에는 조코위(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오토바이를 타고 행렬을 지휘한다는 얘기까지 있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전기차 산업 육성과 보급을 무척이나 챙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요즘 들어 인도네시아에서는 부쩍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대통령을 포함해 정부 관계자들이 연일 전기차 정책을 언급하고 언론에도 관련 보도들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 12일에는 ‘전기차 프로그램 촉진’을 위한 대통령령(2019년 제55호)이 공표됐다. 전기차 산업 육성과 보급 확대를 위한 개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국산부품 사용 요건과 관련해, 2륜차와 3륜차는 현행 40%에서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80% 이상으로, 4륜차는 현재 35%에서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80% 이상으로 한다는 내용 정도가 담겼다.

세부적인 혜택과 정책, 육성 전략에 관한 사항들은 대통령령에 기반해 앞으로 각 부처 장관령 등으로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가 차량에 부과되는 특별소비세 감면 혜택 등이 거론된다. 인도네시아는 특별소비세 때문에 차량 가액이 높은 편인데, 이 세금을 감면해 줄 경우 보조금 지급과 동일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인도네시아에서만 뜨거운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인도네시아에서 요즘 전기차 이야기가 부쩍 많이 들리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전기차가 원유와 석유제품 수입 증가를 멈출 해결책으로 여겨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산유국이지만 매장량 고갈에 따른 생산량 감소와 소비량 증가가 겹치며 2004년 후반부터는 석유 순수입국으로 전환됐다. 에너지광물부 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현재 인도네시아의 석유연료 생산량은 일간 80만 배럴 수준이다. 소비량은 150만 배럴 수준에 이른다. 2030년까지 생산량 증가는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반면, 소비량은 일간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전기차는 대도시 대기오염을 줄일 수 있는 수단으로도 주목 받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는 대기오염 지표가 세계에서 가장 나쁜 도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미 국무부 자료인 대기질지수(AQI) 기준에 따르면 2018년 자카르타 대기 상태는 ‘좋음’이 11일, ‘보통’이 86일, ‘민감군에게 해로움’이 130일, ‘해로움’이 98일을 기록했다. 특정 일자에 세계에서 가장 공기질이 안 좋은 도시로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자카르타의 대기오염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요즘 들어 부쩍 시민들의 관심이 높고, 심각성에 대한 언론보도가 잦은 것은 환경과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도 한 몫을 하였다. 급기야 지난 7월에는 환경운동가들과 시민단체에서 대기오염에 대한 대책을 잘 마련하지 못한 점을 들어 대통령과 정부를 고발하겠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자카르타에서는 9월 9일자로 출퇴근 시간대 홀짝제가 기존 9개 도로에서 25개 도로로 확대시행 되었는데, 대기오염 저감도 중요한 실시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된다.

전기차 산업을 인도네시아의 미래동력산업 중 하나로 삼아보겠다는 복안도 있다. 완성차 부문에서는 투자유치를 통해 생산공장을 건립한다는 계획이다. 산업부 장관 등 정부관계자들에 따르면 현대차와 도요타가 자카르타 인근에 전기차 생산시설을 건립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중국 등 해외 사업자와 현지 기업간 제휴를 통해 전기버스 제조시설을 건립하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오토바이 사용이 많은 현지 특성을 반영한 전기 오토바이 생산 및 보급 계획도 있다. 2년 전 대통령령(2017년 제22호)에서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2025년까지는 220만대의 전기 오토바이를 생산해 보급한다는 구상이다. 이미 현지업체에서 생산하는 전기 오토바이 그싯(Gesits)이 올 4월부터 판매 중이며, 현재 양산을 위한 제조시설 부지를 물색 중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전기차 제조뿐 아니라 전기차에 들어가는 리튬 배터리 생산에도 관심이 많다. 인도네시아에는 니켈, 코발트, 리튬 등 리튬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가 풍부하다. 특히, 니켈은 인도네시아가 세계 최대의 생산국이다.

미 지질조사국(USGS)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전체 니켈 생산량 230만 중 인도네시아가 약 24%인 56만 을 생산한 것으로 추산된다. 급기야 지난달 30일에는 니켈 매장량 보호를 위해 2022년으로 예정되어 있던 니켈 원석 수출제한조치를 2년 앞당겨 내년 1월부터 시행한다는 조치가 발표됐다. 이 여파로 국제 니켈 가격이 하루만에 10% 가까이 오르는 등 출렁이기도 했다. 니켈 금수조치 역시 배터리 부문 육성정책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니켈을 원석 그대로 수출하는 것보다는 배터리를 만들어 수출하는 것이 부가가치가 훨씬 더 높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테슬라 외 복수의 해외기업이 인도네시아에 배터리 제조설비 건립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기차 산업 육성 초기에는 공공부문과 대중교통시설이 전기차 보급을 선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 앞으로 각 부처가 구매할 관용차에는 전기차량 사용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계획도시로 건설될 칼리만탄 동부 새 수도가 전기차 보급 및 활용에 최적의 조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도시 계획에 충전시설 입지 등을 미리 고려하고 버스 등 대중교통차량을 처음부터 전기차량으로 구매하면 가능한 일이다.

이 경우 새 수도가 전기차 보급에 관한 한 시범 도시처럼 될 가능성도 있다.대표적 택시 브랜드인 블루버드, 자카르타의 대중교통시스템인 트랜스 자카르타, 온라인 택시 및 오토바이 서비스인 그랩(Grab)과 고젝(Gojek)도 정부의 시책에 부응하고 연료비를 절감하기 위한 차원에서 전기차량을 구매하고 그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관심은 뜨겁지만 본격적으로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기 위해선 아직 갈 길도 멀다. 이미 발표한 대통령령에 이어서 구체적인 투자 인센티브와 세제 혜택 등이 확정되어야 하며, 충전시설 마련과 같은 인프라 확충도 필요하다.

충전시설 설치 및 운영에 대한 규정을 정비하고 전기차에 쓰이는 전력에 요금을 어떻게 책정할 지에 대한 정책 마련을 위해 정부와 국영전기공사(PLN)간 의견조율도 필요하다. 전기차에 대한 지금의 관심을 유지하고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해선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조치들이 발 빠르게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양동철 수출입은행 부부장,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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