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화웨이 제재와 동남아의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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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선진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전 주인도네시아 대사

[이선진 칼럼]

“영국이 화웨이 제재에 가담하면 중국의 투자를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지난 6월 15일자 영국 주재 중국 대사의 BBC 인터뷰 내용이다. 최근 중국의 대영국 투자가 크게 늘었으나 이것이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고 위협한 것이다. 한국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 5일 한국이 화웨이를 선택하면 “장기적 리스크와 비용이 클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동맹간 신뢰와 안보문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미국과 중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중국과의 기술·경제협력인가, 아니면 미국과의 정치·안보협력인가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한국 상황을 논하기에 앞서 동남아 국가들의 대응을 알아보고자 한다.

아세안 대부분은 내년 5세대 무선통신(5G) 서비스 개시를 준비 중이다. 일부는 화웨이와 협력을 진행해 온 만큼 미국의 화웨이 제재 조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대응을 유형별로 보면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 화웨이와 기술협정을 체결한 캄보디아, 화웨이를 기피하고 독자적 기술개발을 하고 있는 베트남, 핀란드의 노키아나 스웨덴의 에릭슨 등 제3국 업체와 협력해 미중 압력을 피해가는 싱가포르와 태국, 기업의 선택에 일임함으로써 화웨이와 협력을 방임하는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다양하다.

대만 전자업체도 화웨이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일본 호주 뉴질랜드 3국만 가담하고 있다.리센룽 싱가포르 총리는 지난 5월 31일 샹그릴라 대화에서 “보안유지가 100% 가능한 통신시스템이란” 비현실적이라고 했고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도청 당할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발언하는 등 화웨이 문제를 군사안보로까지 연계시키는 것에 반발하고 있다.

아세안은 다음 배경 하에서 미국의 화웨이 제재요구에 부정적이다.미국 압박에도 제재 가담 신중 첫째, 화웨이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로 성장하면서 동남아 기업들과의 연계를 강화해 왔다. 많은 동남아 기업들이 화웨이에 부품을 공급해왔고 화웨이로부터 금융지원을 받았다.

또한 현용 4G 통신을 업그레이드해 5G 통신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기술 지원을 받기도 했다.둘째, 미국의 안보위협 논리가 먹히지 않고 있다.

미 국방부는 화웨이 제품을 쓰는 나라와 군사기밀을 공유하기 힘들다면서 화웨이 제재 가담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동맹국인 필리핀 태국마저 이러한 위험성에 의구심을 표하거나 미국이 고급 군사정보를 자기들과 공유하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셋째, 화웨이 제재에 가담할 경우 큰 경제 손실이 예상되고 5G 서비스 개시의 지연이 불가피하나 이에 대한 대책이나 대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고스란히 각자가 부담해야 할 형편이다.

아세안은 인구 6억3000만명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으며, 경제 규모는 약 3조달러로 다섯 번째로 크다. 2018년 평균성장률은 5.1%로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지리적 중심에 있다. 동남아는 현재 미국과 중국 간 외교, 안보, 기술, 무역 및 해양 패권 경쟁의 최대 격전지가 되고 있다.아세안은 미중 경쟁에 말려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작년 싱가포르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불참해 트럼프의 아세안 경시가 회자되고 있다. 미국이 아세안의 이러한 분위기를 외면하고 화웨이 제재와 인도·태평양 전략 가담을 요구함으로써 미국의 정책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섣부른 한쪽 편들기 경계해야  한국의 사정은 아세안와 비슷하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우리 기업들이 작년 화웨이에 공급한 부품은 100억달러가 넘었고, 4G 및 5G 서비스에 화웨이 부품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삼성, LG 등 IT 기업이 중국에 대규모 투자하고 있다. 우리가 화웨이 제재에 가담하면 중국의 보복은 사드(THAAD) 보복수준의 몇 배가 되고 한국 IT 산업과 경제가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한미 동맹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만큼 미국의 주장을 가볍게 다룰 수 없다. 사드에 이은 또다른 딜레마다. 미중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러한 딜레마는 되풀이 될 것이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섣불리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것이다.

아세안, 유럽의 움직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또한 5G는 한국 경제·기술의 미래이다. 어느 영국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5G 통신기술이 2035년까지 교통, 통신, 제조, 농업 등에서 12조 달러 이상의 생산 효과를 창출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와 관련 아세안 등 제3국에 한국의 5G 기술, 장비 공여 가능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내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