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가 후진국? 스타트업 열기는 이미 한국 추월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의 핀테크 스타트업 사무실

‘왜 세계는 인도네시아에 주목하는가’

 글. 방정환 아세안비즈니스센터 이사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1]
#1. 3년여 전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국내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 A씨는 최근 서울을 방문했다. 합작법인 설립 의사를 내비친 중견그룹 금융 계열사와 밤샘 미팅을 진행하는 등 출장 기간 내내 빡빡한 업무 스케줄을 소화했다. A씨는 “동남아시아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는 한국 기업이 급증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고 귀띔했다.

#2. 핀테크 스타트업 창업자 B씨는 올해 3월을 베트남에서 보냈다. 베트남의 경제 수도 호찌민에서 발품을 팔면서 창업 환경을 둘러보고 현지 진출 계획을 수립했다.
B씨는 “경제 발전에 힘입어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고 금융 서비스 이용 인구가 증가하는 베트남 핀테크 시장에 뛰어들려는 한국 스타트업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강조했다.

2018년 동남아의 ‘핫’ 이슈 중 하나로 스타트업(Startup) 열풍을 꼽을 수 있다. 일부 정보기술(IT) 업계 종사자나 벤처캐피털 등을 제외하면 국내에는 다분히 낯선 뉴스일지 모른다.

하지만 최근 공유 경제의 상징 우버의 동남아 사업 부문을 인수하며 화제가 된 말레이시아의 그랩(Grab) 등 선두 주자들에는 기존 산업의 지형도를 바꾼다는 호평이 쏟아질 정도로 스타트업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뜨거운 스타트업 붐은 동남아의 디지털 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고 있다.

싱가포르의 테크 전문매체 테크 인 아시아(Tech in Asia)에 따르면, 2017년 동남아 스타트업은 사상 최대인 79억달러(약 8조4000억원) 투자를 유치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6년 투자 금액 25억달러(약 2조7000억원) 대비 무려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2013년 스타트업 투자 규모가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에도 채 못 미쳤던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세가 아닐 수 없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싱가포르의 전자상거래 플랫폼 라자다(Lazada), 인도네시아의 호출형 오토바이 택시 서비스 고젝(Gojek) 등 ‘유니콘 스타트업(기업 가치가 10억달러를 넘는 스타트업)’도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다.

초기 해외 유학파를 중심으로 닻을 올린 동남아 스타트업 창업은 젊은 세대 전반으로 저변을 넓히고 있다. 이에 따라 양식업 생산성 향상, 친환경 쇼핑백 제작 등 1차 산업 비중이 큰 동남아 특수성에 모바일 기술을 접목시키는 방향으로 비즈니스 모델도 다양해지고 있다.

여기에 얼마 전부터는 현지의 전통적 가족 기업도 벤처캐피털을 설립하고 스타트업 투자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자금력이 뒷받침되면서 베트남의 기업형 코워킹 스페이스(공유 오피스)가 공격적인 이웃 국가 진출을 선언하는 등 스타트업의 활동 무대 또한 확대되고 있다.

한국 벤처캐피털 업계 역시 뒤늦게나마 동남아 스타트업 전쟁에 뛰어들기는 마찬가지다. 각각 동남아 해양부와 대륙부를 대표하는 인도네시아, 베트남을 중심으로 ‘대박’ 투자처 발굴에 공을 들이는 유력 벤처캐피털의 소식이 들려 온다.

▲ 베트남 호찌민에 위치한 코워킹 스페이스(공유 오피스).
▲ 베트남 호찌민에 위치한 코워킹 스페이스(공유 오피스).

이렇듯 동남아 스타트업 시장이 각광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성장 잠재력 덕분이다. 현재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 주요 국가들의 인터넷 사용 인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동남아 지역에서는 매일 12만명이 넘는 새로운 온라인 이용자가 탄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된다면 2020년에는 유럽연합(EU) 인구에 버금가는 4억8000만여 명이 인터넷 세계에 빠져들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중산층이 부상하는 가운데 역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30세 이하 젊은 층이 디지털 경제에 새롭게 편입된다는 희소식에 글로벌 투자업계는 귀를 쫑긋 세울 수밖에 없다.

물론 동남아 스타트업 열기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쌓여 있다. 대도시를 벗어나면 여전히 열악한 IT 인프라와 고급 개발 인력 부족, 높은 금융 문맹률 등은 동남아 대부분 국가들의 해묵은 숙제다. 싱가포르 등을 빼면 자금 조달을 위한 자본시장이 성숙하지 못하고 스타트업 관련 법적제도적 체계가 정비되지 못한 점도 아쉽다.

하지만 실보다 득이 클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모험 자본의 대명사 벤처캐피털 업체들의 동남아 러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동남아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한국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 업계가 더욱 팔을 걷어붙여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 본토 스타트업의 성공 스토리에서 큰 자극을 받는다”는 현지 창업가들의 고백을 언제까지나 부러워할 수만은 없다.

핀테크, 교육, 모바일 게임 등 유망 분야에서 한국 스타트업의 활약상을 기대해 본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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