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미 협상에만 매달릴 것인가”

글. 이선진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전 주인도네시아 대사

내일칼럼

지난 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북한 방문 결과를 두고 실망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북. 미 협상은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난제들을 풀어야 하는 긴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파격” 행보가 협상 시간을 줄일 수 있으나 과정을 생략할 수는 없다는 사실도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북. 미 협상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우리 모습이 결코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앞장서서 한반도에서 긴장 국면을 전환하였고 북. 미 협상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북. 미 협상에만 운명을 맡기지 말고 한국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대화 국면이 계속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지난 몇 주 사이 한국 “신 남방정책”관련 국제 세미나가 제주도와 서울에서 열렸다. 아세안 학자, 언론인, 외교관들이 다수 참석한 이들 세미나에서 한반도 평화 구축에 관한 적극적인 아세안의 태도가 특기할 만하였다. 지난 10년 동안 아세안은 한국 앞에서 한반도 문제 꺼내기를 꺼려하였다. 균형외교를 표방하는 아세안으로서 유엔 결의에 의한 국제 재제 외 한국의 북한 압박 정책에 적극 동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아세안 사람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한반도 대화 분위기를 크게 환영하고 남. 북한과 양자 차원에서, 지역협력 (다자) 차원에서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제시하였다. 세미나 장에서,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아세안 사람들이 제시한 방안을 다음과 같이 짜깁기해 보았다.

금년 11월 싱가포르 개최 동아시아정상회의 (EAS, 아세안과 한. 미. 중. 일. 러시아 등 18개국 정상들 참석)에 주최국이나 아세안 명의로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한다. 김정은이 비핵화와 경제발전 의지를 직접 밝힐 무대를 마련해 주고 북한을 격려하자는 의도이다.

과거 러시아와 미국이 EAS 가입 전 정상회의에 참석한 전례도 있다. 김정은의 EAS 참석은 제2 트럼프. 김정은 회담으로 이어져 실무협상의 템포를 가속화하고 큰 결단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비핵화 문제는 난제들이 많아서 수시로 정상 간 직접 대화가 필요하다.

다른 한편, 베트남이 EAS 참석 계기에 베트남을 방문하도록 김정은을 초청한다. 두 나라는 공히 1980년 대 말 舊 소련의 붕괴로 인하여 체제 및 경제위기에 직면하였다. 그 때 베트남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한 체 개혁개방정책(도이모이)을 택하여 오늘날의 경제성장에 성공하였다.

반면, 북한은 핵무기 개발로 방향을 잡았다. 베트남의 사례는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직접 보는 것이 훨씬 좋다. 동남아 학자들은 2010년부터 시작한 미얀마의 개혁. 개방 경험도 북한의 경제개발 계획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상은 상상의 시나리오이지만 한 달 후 현실 상황이 있다. 8월 초 연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부장관회의가 싱가포르에서 개최된다. 남북한과 아세안을 포함,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외교부장관들이 참석한다.

10년 전 ARF 때가 악몽으로 떠오른다. 당시 의장국도 싱가포르. 한국이 회의 며칠 전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총격사건을 들어 북한을 강력 규탄하면서 남북한 화합을 대결모드로 전환하였다. 그 전년도 개최된 남북한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의장 성명에 포함시키자는 제안마저 거부하였다.

그 후  ARF 계기에 열리던 남북한 외교부장관 회담이 중단되었고 미, 일본 등도 북한을 만나지 않았다. 금년 ARF에서는, 남북한 외교부장관 회담을 재개하여 미국, 일본 등 우리 우방국이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북. 미 협상이 비핵화 및 한반도 안정에 결정적이며, 중국, 일본, 러시아의 지원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비핵화보다, 전략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하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미. 중은 현재 군사 전략 경쟁에 이어 무역전쟁까지 벌이고 있어 일 년 전과 같은 협력을 기대하기 힘든 분위기이다. 다시 말하여, 기존 “4강 의존 방식”에 보완책이 필요하다.

북한이 강대국 갈등사이에서 비핵화와 경제발전에 대하여 갈팡질팡하지 않도록 조언할 누구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또한, 강대국 사이에서 끝없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북한에게 외교적 “숨통”도 필요하다.

아세안이 그러한 역할에 적임자다. 국제적 북한 압박 정책 하에서도 북한과 우호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번 ARF 회의 때, 아세안 외교부 장관들이 북한의 선택을 지지하고 지원의사를 밝혀 격려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북한을 아세안 대화상대국으로 초청하거나 다양한 지역협력기구(무역, 농업, 의료 등 기능적 기구)에 가입시켜 경제발전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다. 아세안 회원국들은 북한과 다양한 경제 교류를 희망하고 있다.

북한이 직접 나서기가 쉽지 않다. 북한이 아세안, EU 등과 연계하도록 한국의 다리 역할이 필요하다. 우리 외교의 창의력과 용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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