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규 詩人 등단 문장 신인상 수상

인도네시아 문인협회, 문학의 도시 대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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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지난 6월 30일,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회장: 서미숙)회원들이 고국으로 아주 먼 문학 소풍을 떠났다. 이미 알려진 대로 김준규 시인이 계간 「문장」의 신인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 서미숙 회장과 회원들이 문학의 도시, 대구를 찾았다.

문학기행, 광릉과 가사문학

김준규 시인(오른쪽)이 계간 「문장」의 신인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수상받고 있다.
김준규 시인(오른쪽)이 계간 「문장」의 신인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수상받고 있다.

한국수필가 협회 이사장이자 「문장」 발행인인 장호병 선생이 인도네시아를 찾은 것은 올해 4월이다.

적도문학상 심사를 계기로 처음 인도네시아 문협과 인연을 맺었으며, 이에 답례하는 형식으로 이번 답사를 준비하였다. 태풍이 북상한다는 소식도 문학을 향한 열정을 식힐 수는 없는 듯 답사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동대구역에서 나눈 반가운 인사의 말이 채 식기도 전에 ‘광릉’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영천시 북안면 도유리에 자리 잡고 있으며, 천곡 최원도 선생과 둔촌 이집 선생의 유애가 서린 장소이다. 광주 이씨 시조공의 묘소가 ‘광릉’인데, 1371년(공민왕 20년), 신돈이 실각해 유배되었다가 곧 주살 되었고, 장장 4년에 걸친 피신생활도 끝났다.

둔촌이 이곳을 떠날 때는 시로써 전별했다고 전하며, 그 시는 아직도 남아 있다. 흔히들 우의와 두터움을 이야기 할 때는 관포와 양좌를 들지만, 마치 인도네시아 문인협회와 대구의 「문장」처럼 둔촌과 천곡의 우의도 오래토록 기리고 있다.

‘태평가’로 잘 알려진 노계 박인로 선생을 기념하는 노계문학관을 찾았다. 가사문학(歌辭文學)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발생한 문학의 한 형식으로, 조선 중기 이후 사대부에 의해 폭넓게 향유되면서 사대부 시가문학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 개화기까지 지속되었다.

내용은 사대부들의 자연 생활에서 몸에 밴 물아 일체적(物我一體的) 삶을 비롯하여 명승지의 유람, 유배의 체험, 유교적 이념의 구현 등을 담아내고 있다.

노계선생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옹(德翁), 호는 노계(蘆溪) 또는 무하옹(無何翁). 경상북도 영천 출생. 아버지는 승의부위박석(朴碩)이며, 어머니는 참봉주순신(朱舜臣)의 딸이다.

그의 82세의 생애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보면, 전반생(前半生)이 임진왜란에 종군한 무인으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졌다고 한다면, 후반생(後半生)은 독서와 수행으로 초연한 선비요, 문인 가객(歌客)으로서의 면모가 지배적이었다. 특히 어려서부터 시재(詩才)가 뛰어나 1573년(선조 6) 13세의 나이로 「대승음(戴勝吟)」이라는 칠언절구의 한시를 지어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32세인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동래·울산·경주지방을 비롯해 영양군까지 잇따라 함락되자 분연히 붓을 던지고 의병활동에 가담하였다. 38세인 1598년(선조 31)에는 강좌절도사(江左節度使)인 성윤문(成允文)의 막하에 수군(水軍)으로 종군하여 여러 번 공을 세웠다.

1599년(선조 32) 무과에 등과하여 수문장(守門將)·선전관(宣傳官)을 제수받았다. 거제도 말단인 조라포(助羅浦)에 만호(萬戶)로 부임하여 군사력 배양을 꾀하고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善政碑)가 세워지기도 했다. 그는 무인의 몸으로서도 언제나 낭중(囊中)에는 붓과 먹이 있었고, 사선을 넘나들면서도 시정(詩情)을 잃지 않았다.

그의 후반생은 독서수행의 선비이며 가객으로서의 삶이었다. 곧, 문인으로서 본격적으로 활약한 것은 은거생활에 든 40세 이후로, 성현의 경전 주석 연구에 몰두하였다.

밤중에도 분향축천(焚香祝天)하여 성현의 기상(氣像)을 묵상하기 일쑤였다. 또한, 꿈속에서 성·경·충·효(誠敬忠孝)의 네 글자를 얻어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아 자성(自省)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니, 국문학사상 의의는 가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김준규 시인 신인상 수상식
7월 1일, 오후 5시 대구시내 위치한 프린스 호텔에서 「계간 문장」 신인상 수상식을 가졌다. 이번에는 특별히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 회원인 김준규 시인이 시 ‘질경이’ 외 3편이 수상작으로 선정 되었다.

이 자리에서 장호병 발행인은 “신인상 수상은 일생에서 단, 한 번 뿐인 통과 의례이자 문학의 친정을 가지는 일이다”라고 수상자를 격려하였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박윤배 시인은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붓끝을 주문하며 더욱 창작에 게을리 하지 말기를 당부하였다.

특히 대구 문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방희 시인은 “신인은 두 가지 의미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우리는 신과 접하는 접신의 경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바로 신적인 역량을 발휘하라는 특별한 주문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는 새로울 신입니다.

일신 우일신처럼 늘 새로움을 견지하는 자세입니다. 이 새로움을 잃어버린다면 문학이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등단 한지 30년이 넘은 저도 아직 신인입니다. 여러분들도 항상 신인의 자세를 견지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당부하였다.

이어 정호승 시인이 “시와 산문의 경계는 어디인가?”라는 주제로 특강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빛내주기 위해 적도문학상 시 부문 심사를 해 주신 공광규시인 참석하여 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와의 든든한 인연을 보여주었다.

수상자 김준규 시인 수상소감
“여러분 안녕 하십니까! 오늘 제가 드디어 고향에 온 것 같아 감개가 무량 합니다.고향을 떠나, 반세기 동안 비스니즈맨으로 살아오며 늘 자신의 꿈을 숨겨온 삶이 때로는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그것이  바탕이 되어 어린 시절 저의 꿈과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늦게나마 문학에 입문 할 수 있도록 저에게 계기를 만들어 주신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의 서미숙 회장님과 회원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더불어서 아직은 서툴고 부족한 저를 주저 없이 시인의 길로 허락하여 주시고 특히 이번 수여식에 인도네시아 문협 회원님들을 초청 하여 바쁘신 와중에도 함께 즐거운 시간을 내어주신 문장의 장호병 회장님과 박윤배 시인님께 감사드립니다.

적도문학상의 인연으로 이곳까지 찾아주신 공광규 시인님, 그리고 마치 저에게 새 길을 내어주는 듯 한 한국의 대표 거장이신 정호승 시인님의 특강을 가슴에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글 : 한국문협 인도네시아지부 서미숙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