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기 선생님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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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민(JIKS9)/한인포스트 학생기자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의 국악기인 가야금를 연마하고 있는 나는 얼마 전 고국에서 들린 안타까운 소식에 슬픔과 충격을 받았다. 내가 가야금을 만난 것은 2년전이지만 그 당시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었던 황병기 선생님을 직접 뵐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채였기 때문이다.

2018년 1월 31일 82세의 나이로 국악인 중 많은 존경을 받아오던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국악 작곡가이자 가야금 연주가였던 황병기 선생님의 타계는 국내 모든 국악인들 뿐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도 조문의 글을 친서로 보낼 정도로 문화계에서는 큰 충격이었다.

허핑턴 포스트의 한 기사에 따르자면, 황병기 선생님은 지난해 12월 뇌졸중 치료를 받다가 합병증을 입어 폐렴으로 인한 사망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고인의 장례식은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러졌다.

1930년대 경성부, 일제 강점기 시절 속에서 독자로 태어난 그는 중학교 3학년 때의 나이에서 가야금을 처음 배웠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나온 그는 이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음악교수로 활동을 하며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해냈다.

이후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1985년에서 1986년까지 객원 교수로 지낸 적도 있었으며 뉴욕의 카네기홀에서의 독주회를 진행한 일도 있었다. 그의 주 음악활동 중 인상적으로 손꼽히는 것에는 1974년의《침향무 (沈香舞)》, 1977년의《비단길 (The Silk Road)》, 1979년의《미궁 (迷宮, The Labyrinth)》, 1997년의《춘설(春雪, Spring Snow)》, 그리고 2007년에 발표한 《달하 노피곰(Darha Nopigom) 등이 존재한다. 특히 미궁이라는 17분동안 진행되는 곡은 공식적인 연주가 금지 당하기까지 한 노래로 관객을 유난히 무섭게 만든다는, 현대음악과 전통예술혼을 함께 섞은 신선한 작품으로 평을 받았다.

내가 처음 가야금을 시작하고 미궁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맑고 흥겨운 가야금 소리가 아닌 사람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를 끌어내는 무겁고도 어두운 온몸을 전율케 하는 음악이었다.

황병기 선생은 창작 가야금이라는 장르의 창시자로 보통과는 달리 전통적인 연주 방법에 얽매이지 않고, 특히 첼로 활로 가야금의 줄을 비비는 등 여러 가지의 시도를 통해 별다른 국악의 세계로 관중을 인도해 준 ‘국악계의 불세출 천재’로까지 칭송받는 인물이다.

네이버캐스트에서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한때 죽음에 관한 질문을 받자 마자 놀라운 답변을 했다고 한다. “나는 이제 죽겠죠. 그러면 그걸로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는 유언에 제 무덤이나 비석이나 이런 걸 일체 만들지 말라고 했어요.

그냥 저 살 때까지 열심히 살면 됐지요. 죽음 다음에까지 기억되고 그러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황병기 선생님은 타계하셨지만 그가 남긴 음악은 영원히 가슴을 울리며 한국 국악의 꺼지지 않는 불빛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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