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디지털 경제’를 위하여

글. 이선진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전 주인도네시아 대사

아세안이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는 금년 아세안 의장국으로서 아세안 디지털경제를 추진할 계획이다.

그 중에서도 전자상거래 (e-commerce)와 smart city 건설을 우선 사업으로 내세우고 있다. 아세안 국가들이 개별적으로 디지털경제 계획을 추진하는데 싱가포르 구상은 아세안 전체를 대상으로, 즉 집단적으로 디지털경제로 전환한다는 구상이다.

리 총리는 2025년 아세안의 디지털경제규모를 2000억 달러로 전망했다. 그러나 싱가포르 구상의 배경에는 경제적 이유만이 아니다. 아세안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시대적 전환점에 달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퇴조, 중국과 인도의 부상에 따른 지정학적 변화, 국제테러를 포함한 글로벌 이슈 등이 이제까지와 다른 발전 패러다임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흐름과, 자유무역의 퇴조 속에서 값싼 노동력과 자원을 기반으로 교역과 투자에 의존하는 아세안의 현 경제구조로는 지속 성장이 가능하지 않다.

서비스업, 내수시장, 기술 산업 비중을 높이고 시대의 조류에 맞추어 디지털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 싱가포르 TV가 특집으로 중국 일본 한국이 개발하고 있는 스마트시티건설과 농업, 제조업에 신기술 개발 및 로봇 사용 등 다양한 기술혁명 사례를 소개하는 것을 보았다.

중국에 잠식되는 현실에 대한 경계감
싱가포르 구상은 또한 미국 중국을 비롯한 대국들의 전략 경쟁에 대한 대처 전략도 포함하고 있다. 주변 강대국들이 아세안의 정치적 분열을 조장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 아세안의 결속을 강화하고, 2015년 발족한 아세안 공동체의 실질적 진전을 겨냥하고 있다.

아세안의 디지털경제가 중국의 기술력과 정부 지원(일대일로)에 의해 잠식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경계감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 경제는 10개국, 2.5조 달러 경제규모(GDP), 6억3000만명의 인구를 가진 거대한 규모다. 아세안 디지털경제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전자상거래만 두고 보더라도 대중의 신뢰, 전자금융, 각국 법의 상호 조화, 신속한 통관 절차, 정보격차 등 난관이 많다.

다행히 아세안 지역 통신망이 빠르게 발전하고 인터넷 가입자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2020년 인터넷 가입률이 전체 인구의 90% 수준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난관에도 불구, 싱가포르의 구상은 시의적절하다. 이 나라는 과거(1992년) 냉전체제 붕괴 이후 자유무역질서와 세계화의 등장을 내다보고 아세안자유무역협정(AFTA)을 제안했다. 그 결과 정치 안보 위주의 아세안 협력을 경제 중심으로 대전환했고 아세안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싱가포르 구상은 오는 4월 아세안 정상회의와, 이를 전후한 아세안 관련부처 회의를 거쳐 구체안이 나올 것이다. 한국은 싱가포르와 협력해 아세안 디지털경제의 초창기 단계부터 참여하기를 바란다. 한-아세안이 기술, 지식 및 경험을 공유해 4차 산업 혁명에 공동 전선을 구축해 기술 개발의 시너지 효과를 거두고, 앞으로 있을지 모를 위기에 대한 안전망을 함께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대국 의존 형 정치 안보 외교 정책 변해야
또한, 이제까지 한국이 유지해 온 大國(대국) 의존 형 정치 안보 경제 외교의 틀을 다변화해야 한다.

아세안은 인도-태평양을 잇는 지리적 위치, 거대한 경제, 인구의 40%가 30세 이하, 풍부한 지하자원 등 우리의 부족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 사람과 한국 문화를 좋아한다.

리센롱 총리는 작년 11월 아세안+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아세안 디지털경제 구상에 한중일의 참여를 요청했다. 싱가포르 언론인과 학자들은 한국에 대한 기대를 말하고 있다.

지난 40여년 간 동아시아 지역경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일본과 중국이 대립했을 때, 아세안-한국 연합이 결국 중국 일본을 따라오게 한 사례들이 많다.

아세안 디지털경제 계획을 문재인 정부 신남방정책의 핵심 사업으로 채택해 한국-아세안 공동전선을 구축했으면 좋겠다. <내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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