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삼국지

평창 동계올림픽이 평화 올림픽의 면모를 강조하면서 순항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우려하던 상황이었음을 생각해보면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정부의 지속적인 대북 소통 노력과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결정,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남북한 선수단 동시 입장 등이 이어지면서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 섞인 기대도 갖게 한다.

그러나 무대 뒤편에서는 북핵을 둘러싼 치열한 외교전이 전개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북한 의도가 어찌 되었든 일단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모멘텀으로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고 이를 북·미 대화로 연계시켜 북한 비핵화의 단초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평창 개막식에 참가한 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비핵화 논의가 없는 대화는 무의미하다며 북한의 한·미 균열 시도를 저지하고 한국과 최대한의 대북 압박 공조를 유지할 것임을 강조한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도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미소 외교’는 시간벌기용이라며 올림픽 후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예정대로 실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미국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대북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은 일단 ‘한반도 전쟁 불가’를 강조하는 한국 정부 노선을 지지하면서 남북 대화를 반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을 특사로 보내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당초 고위급 대표단 일원으로만 알려졌던 김여정을 특사로 보낸 것은 일단 미국의 위협을 유예시키는 방법으로 남북 관계 개선을 추구하자는 시도다.

미국의 압박 완화 기미가 없고, 중국도 미국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자 민족 공조를 강조하면서 한국과 손잡으려는 의도에 힘을 싣기 위해 혈육을 보내 남북 관계 개선 의지가 강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물론 북핵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강도가 강화되면서 가중되는 경제적 압박을 탈출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고, 평창올림픽 정상 개최의 평화적 추동자임을 국제사회에 알리려는 ‘매력 공세(charm offensive)’ 성격도 있다.

문제는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공을 넘겨받은 한국의 입장이 애매하다는 데 있다. 문 대통령은 이를 즉시 수락하는 대신 ‘여건을 만들자’며 확답을 피했다. 북·미 관계 개선 없이는 정상회담 개최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문 대통령은 북쪽이 적극 나서 달라는 요구도 했다.

결국 북핵 해결의 실마리가 잡혀야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남북 관계 개선과 북한 비핵화는 별개로 진전될 수 없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북핵 문제의 방향성이 잡히지 않은 채 추진되는 남북 정상회담을 경계하는 것이다.

미국은 ‘비핵화 없는 대화’의 무의미성을 강조하면서 ‘선 핵 포기’가 전제되지 않는 한국 정부의 정상회담 추진 자체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현 정부의 시각 속에는 남북 대화나 북·미 대화를 통해 비핵화 규범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은 비핵화에 관해서는 일말의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비핵화 약속 없이 대화를 주장하면서 평창올림픽 이후 대북 제재 완화나 한·미 합동 군사훈련 무기 중단 등을 요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한·미 공조에 문제가 생긴다면 이는 북한의 의도에 우리가 끌려가는 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의 정상회담 제의는 주도적으로 북핵 문제를 풀어보려는 현 정부에는 거부하기 어려운 카드다. 그러나 과거 북한의 도발적 행동들을 억제하기 위한 많은 대화 합의가 어떤 성과도, 결론도 거두지 못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또 자칫 핵보유국 북한과 비핵국가 대한민국 구도가 고착화될 수 있고, 무엇보다 북핵이 외교적으로는 대미 견제용이라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한국을 겨냥하고 한국을 압박하는 무기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강준영 한국외대 중국정치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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